그리운 독도 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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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 동국대학교 교수 / 문학평론가
   
지난 주말 독도 땅을 처음 밟아보는 행운을 누렸다. 동국대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가 참여하는 독도 연구팀의 학술답사 일정에 따라가게 된 것이다.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일본 수로부의 해도(‘조선동안’, 1893)를 최근에 발굴한 교수와 그 연구팀을 실은 배는 울릉도에서 두 시간을 달려 도착했다. 마침내 내 발이 국토의 최동단에 닿았다. 가슴이 다시 설렜다. 이게 뭘까. 특별한 경험에 대한 희열감일까. 치열한 영토 갈등 현장에 대한 체험감일까. 아니면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한 뜨거운 애국심일까.

우리는 섬의 해안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태풍 북상 조짐에 서둘러 배를 타야만 했다. 그 해안,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지표’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나는 설렘의 정체를 비로소 알게 됐다. 그리운 강치. 그곳에서 수천 년을 행복하게 살아오다 한 세기 전 갑자기 멸종돼 버린 생명체. 나는 그들의 평화로운 서식지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학술회의는 치밀한 논증으로 무늬를 짜 나아가고 있었다. 동국대 한철호 교수의 발표문에 일본의 영토 침략 야욕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 눈에 확 다가왔다. “명치시대에 일본이 무주지 선점에 얼마나 전력하고 있는가는 1898년 미나미도리지마(南鳥島)를 일본령으로 편입한 뒤, 1902년 7월 이에 항의하는 로즈힐 원정대를 막기 위해 파견된 이시이 외무서기관의 ‘남조도출장복명서’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 그는 태평양의 수많은 섬들에 대한 열강의 점령 조치는 실력으로 제압해야 하며 모험적인 일본인들에게 선박과 장려금을 지급해서 섬들을 차지하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실력 행사론이 그대로 적용된 사례가 바로 우리 땅 독도다. 일본 상인 나카이 요자부로가 다케시마 어렵회사를 설립하고 독도의 강치를 마구잡이로 포획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치는 물개과에 속하는 해양 포유류로서 독도가 주요 서식지였다. 독도박물관에 전시된 ‘지키지 못해 사라져버린 슬픈 강치 이야기’에 따르면 19세기만 해도 동해 연안에 5만여 개체가 서식했으나 이제는 멸종됐다고 한다. 한 해에 무려 3200 마리의 강치가 일본 어부들의 창칼과 몽둥이질에 죽어나갔다. 당시 수컷 강치 한 마리가 황소 값보다 10배 비쌌다고 하니 ‘모험적인 일본인’에겐 황금 노다지요 일본 정부에겐 자국 산업 보호의 빌미가 된 것이다. 그러는 사이 제국주의 영토 침략의 희생물이 된 독도 강치는 마침내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에 의해 멸종동물로 공식 선언되기에 이르렀다.

수많은 강치떼들이 평화롭게 쉬고 있는 오늘의 독도 풍경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지금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인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일본 다케시마 자료실에는 강치 캐릭터가 전시되고 있다. 캐릭터를 활용해 독도가 자기네 영토임을 홍보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이다. 멸종시킨 장본인들이 이제 다시 그 망령을 캐릭터화해서 국제 분쟁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평화와 문화를 앞세우는 일본식 스토리텔링의 정치적 이면이 씁쓸하다.

독도를 해양생태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일은 새로운 스토리텔링이다. 해양수산부도 이 점의 중요성을 알고 독도 물개 복원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다행히 독도에 강치와 유사한 종들이 종종 출현한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의 폐그물을 깨끗이 걷어내야 하고 선박들의 소음을 줄여야 하는 과제가 있다. 그것이 어려운 일일까? 독도를 실제로 점유하고 있고, 아름다운 생명체들이 서식하는 환경을 조성해 지구 생태계의 평화에 기여하는 나라, 미래 갈등에 대응하는 좋은 전략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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