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제주 감귤의 운명
황금빛 제주 감귤의 운명
  • 김재범 기자
  • 승인 201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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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가을이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감귤 나무 푸른 잎사귀 사이로 노란옷으로 갈아입은 탐스런 열매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1년간 정성을 들여 키워온 감귤 수확철이 시작됐다. 하지만 결실의 기쁨을 맛보야할 감귤 재배 농가들의 얼굴은 그리 밝지 못하다. 농민들이 원하는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노지감귤 출하가 시작된 이달 들어 지난 15일까지 도매시장 평균 경락가격은 1만2511원(10㎏ 기준)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나 감소한 것이다. 2년 전과 비교해도 21% 줄었다.

왜 이처럼 농민들의 애를 태우는 상황이 초래됐을까. 올해산 노지감귤 출하 계획량은 55만7000톤으로 1년, 2년 전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는 데도 말이다.

이로 인해 수요가 많은 추석(9월 8일) 대목이 평년보다 일렀고, 8·9월 잦은 비 날씨로 인한 품질 저하 등이 원인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하지만 제주특별자치도 농업기술원이 16일 발표한 품질 조사에서는 당도 등이 평년보다 높아 품질이 좋을 것으로 분석됐다.

이 때문에 감귤 정책을 놓고 우왕좌왕한 모습을 보인 제주도정이 가격 하락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제주도는 지난 9월 2일 비상품으로 처리되던 ‘1번과(47~51㎜)’ 중 49㎜ 이상을 상품으로 허용하는 등 11단계를 5단계로 축소시킨 새로운 품질 기준 규격을 발표, 올해산부터 적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런데 이달 2일 일부 농가들과 도의회가 1번과 전부의 상품 허용을 요구하는 등 논란이 확산되자 49㎜ 이상 ‘부분 허용’ 시행 시기를 1년 유예, 내년 9월 이후로 넘겼다.

이처럼 제주도정이 한달간 혼선을 주는 사이 비상품인 1번과가 시장에서 버젓이 유통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특히 1번과의 상품화를 예상했던 일부 상인들의 홍수 출하도 이어졌다.

사정이 이런 데도 제주도는 최근에야 뒤늦게 비상품 감귤 150일 특별단속을 수립, 도매시장과 선과장 등을 대상으로 점검에 나섰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감귤 명품화 사업에 대한 중앙정부의 의지가 농가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사업인데도 5년간 감귤산업 투자 계획 중 국비 분담액이 30%에 그치고 있다. 농협중앙회도 올해 2월 제주농협에 명품감귤사업단을 출범시켰지만 조직과 인력이 미흡, 통합 마케팅 등 경쟁력 강화를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제주도와 중앙정부, 농협이 세계적인 명품 감귤 육성을 위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생명산업의 한 축인 감귤산업의 앞날은 더욱 어두워질 뿐이다.

기자는 초등학생이던 1970년대 우영밭에서 새콤달콤함의 유혹을 못이겨 감귤을 따먹다가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듣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감귤 몇 그루만 수확해도 대학교 등록금을 낼 수 있을 만큼 귀한 대접을 받던 ‘대학나무’의 상품 가치를 제대로 몰랐기 때문이다. 또 상처과 등 비상품 감귤 1컨테이너(15㎏)를 불과 며칠이면 3형제가 맛있게 먹고는 손 전체에 노란물이 들었던 기억도 갖고 있다.

왕조시대 임금에게 진상될 정도로 중요했던 감귤은 박정희 정부의 감귤 진흥 정책으로 고소득의 꿈을 심어주었다.

박근혜 정부와 원희룡 도정도 FTA(자유무역협정)로 인한 수입 개방의 위기 국면에 선 감귤산업의 부활을 위해 실질적인 청사진을 보여줄 때이다.

요즘 어두워진 농가들의 표정을 보면서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지난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감귤 주산지를 돌며 약속한 말이 생각난다.

“감귤 농가의 아들로 누구보다 농가의 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농가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감귤 명품화에 노력하겠습니다.”



<김재범 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