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소설가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평창은 지금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게 길이다. 어린 시절 마을에는 일제 때 개통한 신작로가 유일하게 큰 길이었다. 눈이 1m씩 내리던 겨울이면 인근 스키장에서 나온 스노우카가 눈길을 쌩쌩 달렸다. 자동차 꽁무니에 연결한 밧줄을 잡은 스키어들이 대관령에서 줄줄이 내려왔다. 스키어들을 흉내 내다 지치면 우리들은 나무스키를 타고 눈 덮인 비탈 밭으로 올라가 내리달리다가 밭둑에서 멋지게 점프를 했다. 신작로는 70년대에 포장되고 뒤이어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우리들은 올라가지 말라는 고속도로로 올라가 지나가는 차들을 구경하고 잠시 멈춘 관광버스에서 내린 도회지 사람들을 신기한 듯 훔쳐보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소고기조림을 주며 너희들은 감자와 강냉이밖에 못 먹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시작된 고속도로는 점점 넓어지고 높아지더니 결국 마을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그 땅에 살던 사람들 또한 살 곳을 찾아 뿔뿔이 이사를 가야만 했다.
국도와 고속도로에 이어 지금 평창엔 또 하나의 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철길이다. 동계올림픽의 가공할 위력이다. 지금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마을의 풍경이 또다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진부역(珍富驛)에서부터는 험준한 대관령을 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터널이 뚫리고 있다. 고향에서 잠을 자는 날이면 땅 밑 저 아래에서 암반을 발파하는 공사 때문에 한동안 지진이 난 것처럼 집이 흔들리는 것도 감수했다. 마을에 처음으로 기차가 들어온다는 설렘으로 불안을 잠재워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린 아이가 아닌 내가 올림픽을 둘러싼 이 모든 일들을 그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다. 올림픽의 이념은 무엇인가. 올림픽은 왜 이렇게 요구하는 게 많은가. 보다 빨리 서울에 가기 위해, 보다 빨리 서울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올림픽의 경기종목도 제대로 모르면서 유치에 열광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 집 땅값도 어마어마하게 오를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깃발을 흔들었던 것은 아닐까. 이 거대한 모순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체념 아래 수백 년을 한 자리에서 살아온 나무들이 베어지는 것을 애써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부역은 동계올림픽 주경기장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역이다. 역의 이름을 놓고 말들이 많다. 눈의 고장 평창은 동계올림픽을 인간이 아닌 천혜의 자연조건으로부터 얻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그 자연을 파괴한 뒤 올림픽을 개최해야 한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동계올림픽으로 가는 마지막 역 이름을 오대산역으로 정했으면 좋겠다. 그게 여태껏 우리가 파괴한 자연에 대한 아주 작은 위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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