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과 복수초가 쓰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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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철 제주대학교 화학·코스메틱스학부 교수>

가을은 붉은 사과와 노란 밀감, 단풍과 억새 등으로 우리의 마음을 곱게 물들인다. 가을은 노을을 잘라내어 노란 색과 붉은 색 천을 짜깁기하여 인간에게 선물한 것 같다. 인간은 이 아름다운 천에 옅은 미소를 머금으면서 즐거움을 수놓는다.

 

한 알의 사과와 밀감, 단풍과 억새 속에서는 태양이 불타고 별과 달의 미소가 숨쉬고, 농부의 정성이 호흡하고 물이 곱게 흐른다. 이들 자연적 산물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겨울과 봄부터 가을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스며들어야 한다. 인간은 이들의 은덕(恩德)을 입어야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고운 자태로 떨어지는 단풍들이 내 마음 속에서 시구(詩句)가 되어 나뒹군다. 이렇게 11월이 등 뒤로 자취를 감추면 흘러간 한 해를 원망한다. 얼음을 얼음으로 알지 않고 찬 눈송이를 따뜻한 솜이불인 양 덮고 피어날 복수초에 바보처럼 또 다시 희망의 날개를 펼친다.

 

단풍과 복수초는 깨달음의 산물이다. 자연처럼 인간도 버리고 떠남과 내려놓음을 통해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기 위해 수많은 풍파와 고뇌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식물과 인간은 생의 절정에 선다’는 표현을 되새길 때이다. 지금이 단풍과 복수초가 표현하는 소설을 정독할 최적기이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단풍 드는 날’, 도종환).

 

10·11월은 단풍의 계절이면서 억새의 계절이다. 단풍은 드넓은 산에 수채화를 뿌려놓은 듯 울긋불긋한 빛깔을 뽐내며 파란하늘을 더욱 푸르게 하는 것 같다. 억새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람결에 흩날리는 은색의 향연을 구가하는 것 같다. 자연이 쓰는 소설이 가장 감동적이다.

 

단풍은 허공에서 관조의 미학, 억새는 대지에서 율동의 미학을 풍기는 것 같다. 단풍은 순리, 억새는 겸손의 지침서 같다. 가을에는 단풍과 억새가 어우러져야 제격일 것 같다.

 

은빛 물결로 출렁이는 억새, 허공을 배회하며 자연을 수놓는 단풍은 바람을 품어야 제멋을 발휘할 수 있다. 바람이 온기와 냉기를 배달하기 때문에 억새와 단풍과 자연이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인간은 바람의 존재 가치를 잘 인식하고 있을까!

 

가을이 되면 일조량이 줄고, 바람이 찬 공기를 몰고 온다. 이때부터 광합성량이 감소하고 식물은 더 이상 엽록소를 생산하지 않는다. 또한 온도에 민감한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가 만들어지고 크산토필과 카로틴 같은 다른 색소의 색깔이 드러나면서 나뭇잎이 빨간색과 주황색, 노란색 등으로 염색된다.

 

나뭇잎의 내면세계가 오묘하다. 식물은 최대한 광합성을 잘할 수 있도록 햇빛이 잘 드는 잎의 앞면에 엽록체가 빼곡하게 배열되어 있다. 엽록체 속의 엽록소가 햇빛의 녹색을 반사하여 인간의 눈에 나뭇잎이 녹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뭇잎은 빨간색 계통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빨간색을 흡수하고 녹색을 반사하는 꼴이다.

 

이처럼 단풍에도 자연의 섭리와 심오한 과학이 담겨있다. 나뭇잎을 물들이는 다양한 색소들은 인간의 건강관리에 파수꾼 역할을 한다. 이처럼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순리와 조화를 생각하면서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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