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교육공간 관광명소로 배움터의 맥 잇는다
새로운 교육공간 관광명소로 배움터의 맥 잇는다
  • 조문욱 기자
  • 승인 201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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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기획 에필로그

제주 근대교육의 시작은 현 북초등학교의 전신인 제주공립보통학교와 사립 의신학교가 개설된 1907년이다.

 

사립 제주의신학교 설립은 1906년 8월에 제주군수로 부임한 윤원구 군수로부터 시작됐다.

 

▲근대교육의 태동 1907년 4월 귤림서원 자리에 중등교육기관인 사립 제주의신학교를, 같은 해 5월에는 초등 교육기관인 제주공립보통학교를 설립했다.

 

학생 모집을 위해 관덕정에서 백일장을 열어 선발된 자 중 연장자는 사립 제주의신학교에, 연소자들은 제주공립보통학교에 입학시켰다.

 

학교 설립에 대한 윤원구 군수의 열의는 ‘사립 제주의신학교 기본금 연의문’에서 엿볼 수 있다.

 

윤 군수는 연의문에서 “학교라는 것은 오직 나라의 기초요, 백성을 가르치는 근본이다. 국가의 흥폐(興廢)와 인민의 조야가 오로지 교육이란 한 가지 일에 전념해야 하는 것이니 위로는 조가(朝家)로부터 아래로 수재(守宰)에 이르기까지 이런 일에 대해 돌보지 않을 수 없다.....우리 제주도는 인민이 10만여 명이나 되어 하나의 큰 도회라고 할 있다. 총명하고 재주 있는 자제들이 많지 아니함은 아니거늘 공사립학교 하나 세우지 못하였으니 이는 지방 수령들이 돌보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도민의 뜻이 완고한 때문인지! 내가 부임하여 이 땅을 버릴 수 없어 보통학교를 설치해 교육하려 하니 백성들의 이해도 점차 나아지고 학도들도 학교에 모여들어 하나의 학교만으로 수용할 수 없게 되었다”라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일제는 각급 보통학교를 세워 조선인의 교육열에 부응하는 정책을 취했다.

 

1군1교제(一郡一校制)에 의해 1907년 제주공립보통학교가, 1909년에는 표선초등학교 전신인 정의보통학교가, 1911년에는 대정초의 전신인 대정보통학교가 설립됐다.

 

그러다가 1919년 3.1운동 이후 1면1교제(一面一校制)로 보통학교 설치가 확대됐다.

 

1920년 서귀보통학교 설립을 시작으로 각 면 지역마다 보통학교가 설립되고 1938년 일제가 공포한 제3차 교육령에 의해 1면3교제로 바뀌면서 도내에 초등학교 신설이 급증했다.

 

1945년 일제에서 해방된 후 미 군정기에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자녀교육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열기를 용광로처럼 터져 나왔다.

 

해방 이전 일제 강점기에 이미 설립돼 해방을 맞아 휴교 상태에 있다가 다시 문을 연 초등학교는 52개교 였다.

 

또한 해방 이후 미 군정기 3년 동안 설립된 초등학교는 모두 43개교로 당시 초등학교는 모두 95개교에 이르렀다.

 

이 43개 학교 중 33개 학교가 1946년 한해에 집중됐는데 1946년도는 흉년과 콜레라의 유행으로 매우 어려웠던 시기임에도 이렇게 많은 학교가 신설된 것은 당시 도민들의 높은 교육열을 보여주고 있다.

 

2010년 도내 초등학교수가 105개교로 미 군정기 95개교와 비교하면, 정부 수립후 62년 동안 불과 11개 학교만 늘어난 것이다.

 

그것 역시 제주시와 서귀포시 동 지역 확대에 따라 신설된 것임을 감안하면 제주지역의 초등교육 기반은 이미 미 군정시대에 다져졌다.

 

▲늘어나는 폐교 일제 강점기인 1907년 제주공립보통학교 설립을 시작으로 해방을 맞은 제주지역은 각 마을마다 학교가 들어섰다.

 

교육 당국의 지원도 있었지만 자녀 교육을 위한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 대부분의 학교가 세워졌다.

 

도민들은 학교 부지를 희사하거나 학교 설립 기금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학교 설립 과정에서 노동력까지 제공했다.

 

또한 가정형편이 어려워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교포들 역시 후학 양성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듯 제주지역의 학교는 지역주민들의 땀의 결정체였다.

 

그러나 1990년대 급속도로 진행된 산업화 도시화로 많은 인구가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하면서 농촌마을에는 인구가 감소하고 자연스럽게 취학 아동 수도 급감하게 됐다.

 

어려운 시절 주민들의 정성으로 지어진 학교가 하나 둘 문을 닫고 인근 학교와 통폐합되면서 농촌지역에는 폐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본지는 과거 힘든 시절 주민들의 땀과 노력으로 설립된 옛 배움터의 소중함을 후세들에게 일깨워주고 폐교의 현재 모습을 조명하기 위해 지난 7월부터 16회에 걸쳐 ‘사라진 배움터, 지금은’이라는 기획보도를 했다.

 

점차 주민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농어촌 폐교들. 비록 학교 기능은 상실됐지만 폐교는 또 다른 교육 역할을 담당하면서 배움터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가 하면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1998년 문을 닫은 신산초 삼달분교장은 김영갑갤러리로, 가시초등학교는 자연사랑미술관으로, 하천초는 화석박물관으로 운영되면서 도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광령초 상전분교장 자리에는 제주외국어고등학교가 들어섰으며 조천초 신흥분교장터에는 제주시교육지원청 제주다문화교육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이밖에도 청소년수련원, 목공예교실, 공예체험장, 인성교육, 자연생태문화체험장, 도예체험장 등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일부는 마을 운동장이나 복지회관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동안 제주도내에서는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문 닫는 학교가 생겼지만 최근 극심한 저출산으로 도내 전체적으로 취학 연령대 인구가 감소하고, 구 도심권 공동화 현상 등으로 도심지에서도 폐교가 생겨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인구 감소로 인한 폐교는 막을 수 없겠지만 그 학교 설립 당시 주민들이 쏟은 노력과 역사는 길이 간직돼야 하겠다. 조문욱 기자 mwcho@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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