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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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70년 예루살렘 폭동을 진압했던 현장의 로마군 기자 타키투스는 그의 보고서에 60만명이 죽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이 전쟁에 직접 가담했던 유대의 역사가 풀라비우스 요세퍼스는 68~70년 유대 독립전쟁에서 200만명이 죽었다고 그의 ‘유대전쟁사’(요세퍼스의 역사)에 기록했다.

독립전쟁을 주도하는 젤롯당(지하독립당)의 지도자들은 본격적인 독립전쟁을 앞두고 서기 67년 기독교 지도자들과 비밀 회동을 가졌다. 당시 예루살렘 시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기독교인들이 독립전쟁에 동참하도록 요청하는 회담이었다. 불행하게도 회담은 결렬됐다.

당시 예루살렘 기독교는 역사 현장의 문제에 대한 관심은 접어놓고 오로지 교회 팽창주의와 황홀한 영적 체험, 그리고 급격하게 도래한 그리스도의 재림과 거기에 대한 대비가 전부였다. 다시 말하면 탈역사적 기독교, 역사의 현장에 대한 책임을 기피하는 기독교로 전락해 있었던 것이다.

회담의 결렬은 다음 단계의 행동으로 발전했다. 젤롯당의 지도자들은 기독교 지도자들의 처신을 배신 행위로 규정했다. 그리곤 말했다. “우리가 로마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하기에 앞서 이 거룩한 땅에서 기독교인들을 추방해야 한다. 그들은 야훼께서 기업으로 주신 약속의 땅에서 살 자격이 없다.” 그들은 곧 치밀하고 치열하게 기독교인 추방운동을 벌였다.

그래서 약 1년 동안에 엄청난 수의 기독교인들이 강제 추방당해 더러는 가자지구, 또 더러는 요단강 동쪽 황야로 추방됐다.

서기 68년부터 시작된 독립전쟁(로마의 시각에서는 예루살렘 폭동)은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 제10군단에 의해 철저하게 제압됐고, 예루살렘은 초토화됐다. 남아 있던 기독교인들은 가혹하고 참담하게 죽임을 당했다. 유대인들의 철저한 몰락이면서 동시에 예루살렘 기독교의 완전한 몰락이었다.

이 참담한 역사는 역사 현장의 과제를 기피하는 교회는 역사의 현장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뼈저린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다.

탈역사주의에 비견될 또 다른 사례는 민족지상주의(民族至上主義)다. 20세기 인류 비극의 대표적 사례인 제1, 2차세계대전은 독일의 민족지상주의가 연출한 최악의 드라마다. 민족지상주의에 대한 독선적 신념을 지닌 히틀러는 600만명의 유대인들을 가혹하게 학살하면서도 인류를 구원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이 신념의 상징으로 나치 깃발에 갈고리 십자가를 그려 넣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패륜적 신념을 행동화한 것이다.

이때 독일 교회는 맹목적 민족지상주의와 손을 잡고 그들의 반인륜적 살육 행위에 적극 동참함은 물론 나치 독재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했다. 이는 독일 교회가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아픈 상처라 아니할 수 없다.

종교가 탈역사주의에 빠져 자체적 황홀에 매몰된다면 이는 역사 속에 존재할 이유도 가치도 없으며, 반대로 민족지상주의에 빠진다면 세대를 넘어 통곡하고 후회할 오류에 빠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지금 민족의 화해와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기독교는 화해의 종교이다. 화해는 반드시 상대적이다. 우리는 성서에서 신(神)의 무한한 화해 행위를 본다. 신(神)의 독생자이신 예수의 십자가 고난은 화해 행위의 극치요, 은총의 신비다. 그러나 이러한 용서와 화해의 은총도 회개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불행한 한계가 있다. 즉, 회개하지 않은 죄인은 하나님도 용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민족의 화해를 성취해야 한다고 목숨을 건 이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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