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역사와 제주의 생물산업(I)
과학기술의 역사와 제주의 생물산업(I)
  • 현해남
  • 승인 200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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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는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과학은 인접분야와 결합하는 일이 잦아졌다.

19세기 이전에는 생물학과 화학이 별개의 학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두 학문은 서로 어깨 너머로 자꾸 넘겨보다가 마침내는 눈이 맞아 생물산업의 근간인 생물화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탄생했다.

물리학과 생물학, 생물학과 의학, 의학과 화학이 결합하는 등 모든 분야가 인접분야와 결합하고 있다. 별개의 영역으로 다루어지던 BT, IT, NT, ET 등의 경계가 없어진 것이다.

제주도는 국제자유도시 7대 선도사업의 하나로 생물산업 육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설을 보내며 달력을 걷어 보듯이 생물산업과 관련된 학문이 어떤 역사를 갖고 있으며, 제주의 생물산업은 어떤 방향을 향해 가야 하는지를 몇 회로 나누어 살펴본다.

150만~200만년 전에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남쪽에서 네 발로 기다시피 걸어다니며 살던 호모사빌리스 부부가 인간으로서는 상당히 개선된 두 발로 걸어다니는 호모에렉투스라는 아이를 낳았다. 호모에렉투스는 석기로 활과 창과 같은 도구를 만들어 짐승이나 잡으면서 150만년 동안 빈둥거리며 살았다.

20만년 전에는 우리와 비슷한 호모사피엔스가 그동안 쓰던 석기도구를 반짝반짝 빛나는 쇠붙이 도구로 바꾸었다.

1만년 전부터 인간은 배가 고플 때마다 짐승을 쫓아다니는 일을 그만두고 짐승들과 사귀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동물들은 쉽게 속아넘어가 순순히 길들여졌다. 소가 사람들 품안으로 들어와 젖을 빼앗기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그로부터 기원전 3000년 전까지는 페루에서 감자와 콩을 식용으로, 동남아시아에서 쌀, 사탕수수, 바나나, 코코넛 등을 식용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올리브에서 기름을 짜서 요리에 넣으면 맛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뒤이어 포도를 으깨어 놔두면 포도주가 되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지금의 생물산업의 하나인 발효과학의 시초일 것이다. 우리의 오메기술과 고소리술도 이런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기원전 4세기 이전까지 그리스인들은 깊은 사고와 관찰을 통해 지구의 많은 비밀을 풀려고 했다. 기원전 460년에 태어난 히포크라테스는 주술로부터 의학을 해방시킨 최초의 의사였다. 뒤이어 384년에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 물리학, 생물학, 인문학의 기초를 다져놓았으며 실제로 생명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는 동물과 식물을 분류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등으로 나누었다.

지중해 전역을 지배했던 로마제국이 407년 망하면서 과학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기독교가 융성하면서 우주 만물의 원리를 밝히려는 연구를 장려할 리가 없었다.

서기 500년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플라톤이 철학을 가르치던 아카데미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을 가르치던 리케이온을 폐쇄하고 아랍인들이 알렉산드리아 박물관을 파괴하면서 과학은 암흑기에 접어든다.

1665년 영국의 로버트 훅이 코르크 속에서 세포를 발견하고 그것을 영어로 ‘방’이라는 뜻의 ‘Cell(세포)’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세포이론의 시작이었고 생명에 관한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날과 같은 생물산업이 싹트게 되고 한반도 최남단 제주에도 생물산업의 씨가 자랄 토양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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