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情 느껴지는 제주의 사람냄새…내 인생철학과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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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정착 9년 등공예가 윤성재
   

서울이 고향인데도 제주지역의 수호신이 되기를 자처한 남자, 윤성재(35, 전통한지등공예). 올해로 ‘제주살이’ 9년차에 접어든 그에게 이곳은 아직 미완성된 자신의 꿈을 다듬어가는 공작소와도 같은 곳이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레지던시 입주작가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그는 3년 전 서귀포시 예래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제주시 삼도2동 문화예술의 거리에 ‘쿰자살롱’을 오픈했다. 이곳에서 다양한 전공 작가들의 작품 판매는 물론, 정기적인 워크숍·전시를 통해 지역주민들과 융화하며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왜 하필 제주였을까.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 관심도 없고 각박하기만 한 서울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가장 큰 이유였다”는 그는 “바쁘지만 여유 있어 보이고 무엇보다 정(情)이 느껴지는 제주의 사람냄새가 내 인생철학과 잘 맞았다”며 제주 정착의 이유를 어필했다.


사실 그와 제주의 인연은 2003년 시작됐다. 스쿠버다이빙 강사로 섬 속에 첫발을 들여놓은 그는 직업 특성상 겨울철이 되자 일거리가 없어졌고, 밥벌이를 위해 찾은 기획사에서도 만만치 않은 ‘인생의 쓴 경험’을 하고 나서 제주살이를 포기했다.


“제주를 만만하게 봤던 게 화근이었어요”라며 머쓱한 웃음을 내보인 그는 “아무런 목표는 정해 놓지 않고 군 제대 후 막연히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살고 싶다는 성급한 생각부터가 잘못이었다”고 제주정착의 첫 실패를 나름 분석했다.


그러나 제주에서 치른 실패의 고배(苦杯)는 그에게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됐다. 다시는 찾지 않을 것만 같았던 제주에서 또 다른 윤성재로 살아갈 꿈이 꿈틀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로 가던 중 들른 진주에서 ‘유등축제’와 맞닥뜨린 그는 제주신화를 접목시킨 ‘등축제’를 스케치하기 시작했고, 곧장 한지조명업체에 입사해 기초 작업을 익힌다. 그즈음 일본의 아오모리 네부타에서 마을의 축제를 보면서 제주를 다시 연상했고, 이곳 제주에서 신화와 연계한 축제를 여는 꿈은 확고해졌다. 지금 이곳에서 그 꿈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전통한지를 활용한 등 축제를 통해 일반인에게 어렵기만 한 신화를 마을 단위로 엮어내 쉽게 풀어나가고 싶다”는 그는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지 않고 축제장을 찾은 누구나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보고 즐기는 축제의 완성이 나아가 제주등축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에 정착하는 문화예술인들과 지역 토착민이 조금만 더 소통한다면 명품 콘텐츠 개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 그. 그는 “제주 사람들은 너무 익숙해져서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에 대한 발전 가능성을 잊고 있다”며 “참신한 기획력만 더해진다면 가치는 무궁무진하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지역 특산품을 브랜드화 할 만한 캐릭터에도 관심이 큰 그다. 농민들이 땀 흘려 수확한 친환경 농산물의 절반 이상이 판로가 없어 헐값에 팔리는 현실을 보면서 도외 지역으로 판로를 연결해주는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것도 뒤늦게 제주도민에 합류한 그의 책임인 것만 같아서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동자석 캐릭터 ‘쿰자’다. 무덤을 지켜주는 동자석이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주고 보필하듯 제주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의 품질을 보증해 주는 수단 이상의 가치를 발휘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가장 ‘제주스러운’ 캐릭터 개발을 위해 집중했다. ‘쿰자’에서 생산·판매 되는 캐릭터에 대한 신뢰를 통해 나아가 제주문화의 진화도 가능할 거라는 믿음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열정과 애정에 비해 사람들과 쉽게 융화되지 않는 현실, 제주에 정착한 문화예술인 간 소통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은 늘 과제로 남아있다.


“제주 정착 예술인 간 교류가 활발하기를 기대한다”는 그는 “다양한 정보와 고충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의 장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공예 작가들의 모임이다. 장마와 곰팡이를 바람에 날려 보내버리기 위한 제주지역의 의식(굿)의 명칭을 딴 ‘(가칭)마불림’을 통해 도내 문화예술과 지역주민 서로 간 소통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란다.


제주인들도 잘 모르는 의식·단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그에게서 또 다른 제주의 미래를 보는 듯했다.


제주가 좋아 이곳에 눌러 앉은 그, 결혼을 포기할 때 쯤 인생의 반쪽 역시 퍼즐 맞추듯 찾아준 제주가 마냥 좋고 이곳에서만 행복할 수 있다는 그,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그의 미소 속에서 제주의 멋진 미래가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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