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포럼] 말로서 말이 많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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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조선왕조실록 중 ‘인조실록’에는 이 말이 자주 반복된다고 한다. 병자호란을 맞아 조선 16대 임금인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지금으로부터 370여 년 전의 일이다. 북풍한설이 맹위를 떨치던 그 해 겨울 인조가 남한산성에 들어가 나오기까지 47일간, 고립무원의 그 성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최근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에 오른 김훈의 신작소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의 치욕을 다룬 역사소설이다.

청나라 대군의 침략으로 궁을 버리고 남한산성에 숨어야 했던 인조와 조정의 치욕, 병자호란. 소설은 이러한 위기사태를 맞아 결사항전을 고집하는 주전파 김상헌과 살기 위해 화친을 내세우는 주화파 최명길의 첨예한 대립을 작가 특유의 장엄하고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치욕을 견디며 살아낼 것인가” 아니면 “치욕 대신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 하지만 풍전등화의 흔들리는 국가의 운명 앞에서, 성에 갇힌 조선은 ‘입’으로만 싸우고 있었다.

“지금 성 안에는 말(言) 먼지가 자욱하고, 성 밖에는 말(馬) 먼지가 자욱하니 삶의 길은 어디로 뻗어 있는 것이며, 이 성이 대체 돌로 쌓은 성이옵니까, 말로 쌓은 성이옵니까”

소설 속에서의 구절에서 보듯 산성에 갇힌 주군과 고관대신들의 무기는 오로지 말(言)뿐이었다.

임금을 능멸한 것은 날아오는 청군의 화살이 아니라, 죽자는 것도 살자는 것도 아닌, 고관대신들의 들끊는 말이었다. 주전파의 말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으며, 주화파의 말은 실천 가능한 치욕이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죽음보다는 치욕을 감내하는 것이 선택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아무리 치욕스럽고 고통스럽더라도 인간의 삶이 명분있는 죽음보다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 느껴졌다.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 것일까. 어디 남한산성 뿐이고, 옛 사람들의 이야기일뿐일까.

시대만 바뀌었을 뿐 우리는 여전히 난무하는 ‘말의 쇼’에 지쳐있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쏟아 놓는 정제되지 않은 말들로 정치권은 물론 온 나라가 어지럽다.

최근에는 자신의 지지자 모임인 참여정부 평가포럼에서 거침없는 독설을 또다시 쏟아냈다. 굳이 정치 지도자의 언행과 자세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말로서 말이 많은’ 대통령이다. 정치적 이해득실을 떠나 이제는 그들만의 ‘말의 향연’에 피곤하고 짜증스럽다.

경기가 호전 조짐을 보이고 있다지만 실직으로 고통받고, 구직을 포기한 채 시름속에 살아가는 서민들이 주변에는 너무 많다. 그들에게 있어 정치지도자, 특히 대통령이 가볍게 던지는 말투는 그들의 멍든 가슴에 던지는 ‘폭탄’이나 다름없다.

특히 올해는 17대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있어 온갖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에서부터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경구에 이르기까지 정치판은 그 어느때보다도 ‘말(言) 먼지가 자욱’하다.

말이란 잘쓰면 약이요, 못 쓰면 독이 된다. 흔히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라고 하지만, 거꾸로 해석하면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질 수 있다.

말로서 어지러운 요즘, 장자(莊子)의 ‘대변불언(大辯不言·위대한 주장,변론은 말로 하지 않는다)을 되새겨 본다. 어디 입으로 소리를 내서 하는 것만 말인가. 아침의 하늘은 붉새로 말하고, 저녁 하늘은 노을로 말을 한다. 봄의 땅은 꽃으로 말하고, 가을의 땅은 열매로 말한다. 마찬가지로 대통령은 국정으로 말을 하고, 국회의원은 정치로서 말을 하고, 판사는 판결로서 말을 하고, 기자 또한 기사로서 말을 한다.

굴욕의 순간은 성큼 성큼 다가오는데 허망한 말싸움을 벌이며 지쳐가는 산성의 사람들. “말로서 정의를 다툴 수 없다”던 작가 김씨의 말이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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