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도서관 구축, 그러면 책 좀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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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보’란 말이 넘쳐나고 있다. 정보화라는 말만 들어도 기를 못 펴는 사람은 불안할 정도이다. 정보라는 말 자체는 별로 부담될 게 없지만 이상하게도 굉장한 압박감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혹시 나만 그 대열에서 낙오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보화 바람이 불어오자 사람들은 모두 정보로 무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그 정보화란 컴퓨터에서 얻어진다는 강박증과 함께 말이다. 그런 생각 때문일까. 요즘엔 책을 보며 울고 웃고 덮기엔 왠지 불안해지는 분위기이다. 책을 읽을 땐 책에서 뭔가를 반드시 얻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도서관도 그냥 도서관이 아니라 ‘정보센터’, ‘정보도서관’, ‘디지털 도서관’ 같은 이름으로 바뀌기도 한다. 읍면 단위의 공공도서관에 간 아이들은 열람실보다 정보자료실의 컴퓨터에 매달려 있다. 도서관인지 PC방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이다. 괜한 우려인지 몰라도 도서관이 도서관 구실도 충분히 하기 전에 정보화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이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학교 도서관은 더욱 심각해 보인다. 아직까지 도서관이 없는 학교도 있고, 그나마 도서관이 있어도 책을 제대로 갖춘 곳은 많지 않다. 더구나 아이들과 책을 연결해주는 사서 선생님이 제대로 없는 게 현실인 데도 한편에선 전자 도서관 만들기에 열심이다. 전자 도서관의 핵심은 e-book이다. 책을 갖춰놓는 대신 아이들이 전자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건데 그게 책과는 멀고 컴퓨터와는 가까운 요즘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이라는 생각은 아닌지 짚어 볼 일이다.

책과 멀어져 컴퓨터만 하는 아이들이 보기에 컴퓨터 속엔 전자 책 말고도 재미있는 게 너무나 많아, 책을 안 보는 아이들은 전자 책에도 관심이 없다. 생색내기는 좋을지 몰라도 효과는 없는 것이다. 만일 이런 곳에 예산을 낭비해 도서 구입비는 줄고, 책과 아이들을 연결해주는 도서관 본래의 일을 하지 못한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작년 어느 학교 도서관에 지원된 4000만원이 넘는 돈이 시설과 정보화에 모두 쓰인 걸 보고 놀랐다. 책이 형편없는 상황이었는 데도 책에는 한푼도 안 쓰였단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요즘엔 또 경쟁적으로 학교 홈페이지에 e-book을 연결해놓고 전자 도서관이 다 구축된 것처럼 야단법석인 모양이다. 똑같은 틀에 똑같은 문장 구성에다 목소리. 성의없이 만들어진 e-book 꾸러미는 저질의 전집을 잔뜩 진열해놓은 장서랑 다를 게 없다. 한두 번만 보아도 재미없어 외면하는 아이들 얼굴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학교 도서관이 빠진 정보화의 늪은 너무 깊어만 보인다.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도록 하려면 먼저 좋은 책을 고르는 게 최선이듯 e-book에 대한 접근도 신중해야 한다. e-book은 책을 대신하는 게 아니라 영상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다만 책을 좋아하게 하는 계기로 활용되었으면 한다. 고르고 골라 보여주고 다시 책을 볼 수 있도록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보다 먼저 좋은 책이 가득 찬 도서관 만들기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 튼튼한 아날로그 환경 위에 디지털로 갖추어 가야 하는 것이다. 전자 도서관 구축이 곧 정보화의 완성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껍데기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우리 아이들에게 정보화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법을 배워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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