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만들기
추억 만들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책모임 어머니들과 아이들이 함께 시골집에 가기로 했다. 방학을 맞아 시골 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시골집에 모여 하루 실컷 놀자는 계획이다. 오후쯤에 도착한 아이들은 마당에서 불을 피우고, 그네를 타고, 텃밭에 있는 귤도 따는 등 신나게 떠들며 놀고 있다. 집안으로 들어선 아이들이 이 방 저 방을 오가며 즐거워한다. 층간 소음으로 매일 “뛰지 마라, 떠들지 마라”하던 부담을 떨치고 마음대로 뛰노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이 하루 만이라도 제대로 노는 맛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녁 6시! 축구선수가 꿈인 초등학교 6학년 남자 아이 해준이가 축구중계를 보고 싶다고 한다. 50여 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을 노리는 한국 축구팀의 준결승전이 있는 날이란다. TV를 켜고 앉아서 중계방송을 보는데 어쩌면 그렇게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잡았는지 지켜보는 어머니들이 웃음보를 자아낸다. 다섯 살 어린 아이들은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고, 그보다 앉은키가 큰 초등생들은 자연스럽게 다음 줄에, 그 아이들 뒤로는 어머니들이 편안하게 앉아 시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어린 아이들은 인내심의 한계가 왔는지 한두 명씩 일어서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 놀이를 찾아 자리를 뜬다. 그렇게 전반전이 끝날 때 쯤 해준이와 어머니들만 TV를 보고 있었다(그래도 자기들이 보고 싶은 만화영화 보겠다고 떼쓰지 않는 다섯 살짜리들이 대견했다).

 

“엄마, 라면!” 해준이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짧은 한 마디를 던진다. “다른 아이들도 있는데 어떻게?” 엄마가 조심스럽게 안 된다는 뜻을 전한다. 요즘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라면을 먹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와중에 그나마 축구 보며 라면 먹는 걸 기대했던 해준이는 엄마의 안 된다는 대답에 점점 표정이 굳어져 갔다.

 

“아이, 남들은 치킨 먹으며 축구 중계 보는 게 제일 좋다는데 라면 정도야 어때요? 어린 아이들은 노느라 모를 테고, 혹시 냄새 맡고 오면 조금씩 나눠 먹지 뭐! 두 개 끓입시다.” 성미 급한 내가 설레발을 쳤다. 후반전 중간쯤에 라면을 먹으며 축구를 보고 있는 해준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우려했던 어린 아이들은 뛰어노느라 정신이 없어 모르고 대신 엄마들이 몇 가닥씩 먹으며 “해준이 덕분”이라고 한다.

 

여러 집이 모이게 되면 배려하는 마음이 우선이어야 하지만 다른 아이 때문에 누군가가, 어린 아이들 때문에 조금 자란 아이가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누구에게나 추억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마당에서 불을 피우던 추억, 마음껏 뛰어놀던 추억, 그 중에 축구 보며 라면 먹었던 추억도 소중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한 30년 쯤 후에 해준이가 “시골집에서 축구 보며 먹었던 라면이 가장 맛있었다”는 추억이 남는다면 그것으로 이미 건강한 삶이 될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