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지역예술인 위한 허브 공간 마련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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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미술가
   

20여 년 전 어느 날 전라북도 전주 출신의 한 여자가 여행 삼아 제주를 찾았다. 성산일출봉을 들른 그는 그곳에서 바라 본 제주의 풍경과 귀를 휘감는 바람소리에 매료돼 훗날 제주에서 평안한 노후를 보내겠노라고 다짐했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다짐은 현실이 됐다.


박진희 미술가(조각 전공·46)는 그렇게 이곳 제주와 인연을 맺고 ‘제주시 연동 주민’이 된 지 올해로 2년째를 맞았다.


전주에서 숨조형연구소를 운영하며 영화의 거리 ‘수작(手作) 아트페어’ 연출 등 대중을 위한 공공미술을 조각해 온 그는 “15년 동안 공공기관 프로젝트에만 열중하다 어느 순간 자취를 되돌아보니 업적은 남아 있었지만 작가로서 외도가 길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뇌리에 번뜩였다”며 그 순간 인생의 쉼표를 찍지 않으면 그 이후의 삶조차 무료해질 것 같았다고 한다.


제주는 그에게 그런 곳이었다. 인생의 제2막을 보내기에 충분한 쉼터이자 반석과도 같은 곳이었다.


쉴 틈 주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 온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제주시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첫 1년은 구석구석을 여행했다. 그동안 소홀했던 아이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열중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제주시 해안동의 작은 학교에 아이들을 맡기고 그 주변에 작업실을 마련, 마을 주민들과 어우러지기 위한 공동체 형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선 활발하게 운영되지 않던 문화의집을 활용, 주부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쉽게 열 것 같지 않던 지역주민들과 가슴으로 이야기 나누는 경험을 하고 있는 그다.


그에게도 ‘제주살이’가 처음부터 호락호락하지 만은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퉁명스럽고, 무뚝뚝하고,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려 하지 않는 제주 사람들만의 특징(?) 때문에 난처한 적도 많았지만 시간이 흘러 상대방의 진심을 알고 나면 그렇게 친절할 수 없는 것 또한 이곳 사람들이라고 회상하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이라고 특정했다.


제주에 정착한 지는 이제 겨우 2년이지만 제주의 청년층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고 서슴지 않고 말하는 그는 영락없는 ‘제주사람’ 이었다.


“즐길거리, 볼거리, 배울거리 등이 다양하지 않다며 하나 둘 농촌을, 제주를 떠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어 안타깝다”는 그는 “관객과 배우가 가까운 곳에서 소통할 수 있도록 작은 무대가 많은 곳이 전국적으로 그리 흔치 않다. 숨은 곳곳에서 펼쳐지는 무궁무진한 공연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제주에 정착한 문화예술인들이 이주민이 아닌 지역주민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 운영도 제안했다.


“‘문화이주민’이라고 선을 긋는 순간 이미 우리들은 뭍에서 섬으로 건너 온 타인이 되는 것”이라며 “문화예술인을 특정 지역으로 이끌어내 도드라지게 하지 말고 정착한 마을 안에서 지역주민들과 대화의 장을 만들어 서로에 대한 정보를 교류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여행자로서 바라보는 제주와 제주민으로서 바라보는 제주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그. 감탄사를 연발하며 풍경을 단순히 즐길 때의 바람은 온몸을 간질이는 느낌이지만, 일상에서 느껴지는 바람은 그냥 너무 많이 부는 것만 같고 또 어떤 때는 무섭게 위협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바로 그 차이다.


하지만 그는 어떤 입장이어도 그냥 제주여서 좋다고 말한다. 다만 지나온 역사와 문화를 들먹이며 ‘제주 사람은 어떻다’라는 식의 선을 그어 다가가기를 저어한다거나 다가오려는 이들을 외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제주의 색깔을 지키되 이곳에 정착한 이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준다면 서로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훨씬 더 깊고 넓게 공유할 수 있다고 믿는 그는 창고형 갤러리와 전국의 워크숍을 유치할 수 있는 공동 작업장, 숙박시설을 갖춘 지역 예술인들의 허브공간을 마련하는 소박한 꿈을 위해 이제 서서히 기지개를 켜려 한다.


눈보라 치는 제주의 풍경이 늘 눈에 아른거려 지금도 그런 날씨엔 어김없이 한라수목원에 올라 저 멀리 시내를 바라보며 제주의 바람과 교감하는 여자, 인복(人福)이 좋아 제주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며 제주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여인, 지역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예술로 승화하는 예술인들이 제주의 문화를 지키는 힘이라는 믿는 그녀. 제주의 속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천리안, 그녀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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