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5.16과 제주 개발의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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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9월 8일 제주북교 운동장에 모인 5000여 도민은 4개월 전 새로 등장한 군사정권 최고 지도자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도립 제주대의 국립대 승격과 제주시 도로 포장 착수 등을 실천하면서 새 정권에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이날 환영대회에서 “제주도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과거 중앙정부의 관심이 적었다”며 “앞으로 정부는 제주도 개발과 발전에 큰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밝혔다.

 

박 의장은 당초 1박 2일간 제주에 머무를 계획이었지만 2박 3일간 머무른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김 지사는 이후 제주일보 연재에서 실제 박 의장의 체류는 3박 4일이라고 증언했다.

 

이처럼 박 의장은 체류 일정을 연장해 배편으로 정방폭포, 범섬 일대, 중문 백사장 등을 돌아보고는 제주의 경치에 매료됐다.

 

재임 18년간 제주를 28번이나 찾았고 제주 개발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 박 대통령과 제주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열악한 지방 재정 여건으로 인해 중앙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최고 권력자의 관심은 중요했는데, 이 같은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는 김영관 도지사의 역할이 컸다.

 

육군 중심의 쿠데타에서 유일하게 해군 출신으로 도지사에 임명된 김 지사는 군내에서도 추진력에 있어 정평이 나 있었다.

 

그는 도지사 취임 후 제주 개발을 위해서는 물과 길의 혁명이 바탕이 돼야 함으로 깨닫고 적극적인 중앙 절충을 통해 예산을 끌어들여 관련 사업을 추진했다.

 

또한 4·3 이재민의 원주지 복귀와 함께 재일교포 자금 유치를 통한 개발사업 추진을 위해 재일교포들과 유대 강화에도 힘썼다.

 

박 의장이 초도순시 때 체류 일정을 연장한 것도 제주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한 그의 노력 덕분이었다.

 

김 지사의 개발 방안은 초대 민선지사였던 강성익 지사가 ‘대제주 건설’을 표방하면서 추진하다가 재정난 등으로 중도 하차한 내용이 많았다.

 

이후 정부의 개발 위주 정책에 도민들이 적극 협조함으로써 제주도는 급격한 개발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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