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약
시간이 약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우정. 제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던 길고 긴 설 연휴도 지나갔다. 3350만 명의 국민들이 설 명절을 가족들과 보내기 위해 ‘설렘 반 고생 반’의 행보에 나섰고, 다른 황금연휴 때처럼 인천국제공항에는 여행객들로 만원을 이뤘다고 한다.

제주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와 천혜의 자연경관을 만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갔다. 하지만, 어떤 가족들은 독감과 장염으로 연휴 내내 집에서 지내거나 부푼 기대를 갖고 찾은 여행지에서 아픈 아이를 간호만 하다가 돌아가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학병원 응급실은 독감과 장염 환자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지난 1월 말 독감주의보가 발령된 이후로 독감 환자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17일 인플루엔자 검출률이 7주 현재 50.9%로 전 주의 38.2%보다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감기를 일으키는 일반 호흡기 바이러스에 비해 독감바이러스는 발열, 근육통, 두통 등의 전신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감기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거나 갑자기 심한 고열이 발생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을 찾은 많은 엄마들이 독감 바이러스가 확인된 후 아이의 코와 입에 마스크를 씌우며 애가 탔을 것이다.

독감이 확진되면 9세 이하의 어린이나 65세 이상의 고령자, 임신부나 면역 저하자, 고위험 질환군 환자들에게는 타미플루라는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한다.

그런데 병원 비축량이 바닥날 만큼 어린이, 어른 가릴 것 없이 독감 환자가 급증했다.

비록 타미플루가 독감의 증상과 기간을 줄이긴 하지만, 여느 감기와 마찬가지로 시간이라는 약도 필요하다. 심한 고열이나 몸살로 힘들어하는 아이나 이를 지켜보는 엄마들이 빨리 호전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적절한 투약과 함께 경과를 이해하며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어찌 보면 분명히 약일 것이다.

겨울철 식중독의 대표적인 원인인 노로바이러스 장염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여름철에만 식중독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올 겨울에도 식중독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질병관리본부에서는 노로바이러스 검출률이 매주 20~30%를 웃돈다고 보고하고 있다.

노로바이러스 장염은 1~2일의 잠복기를 거쳐 구토, 설사, 복통, 오한 등을 일으키는데, 증상이 심하거나 탈수가 생기면 수액 치료 등이 필요하지만, 안정을 취하며 회복을 기다리는 시간 역시 또 하나의 약이다.

독감이나 장염으로 힘들게 고생하는 환자에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야속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래도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기에 시간은 희망적인 처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시간을 좌절, 실망, 분노에 대해 처방하려는 모습이 너무나 많아 보인다.

작년 세월호 참사 이후 무성했던 약속과 대책들이 희미해지고, 국민건강을 앞세워 담배값 인상을 하더니 다시 저가 담배 도입 논란으로 시끄럽고,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고 국정원 대선 개입에 무관심한 모습 등은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국민에게 내린 처방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지금껏 그런 처방이 나름대로 효과가 있어 왔기에 잘못된 처방으로 오용되어 왔다. 시간이라는 처방이 계속 남용된다면 언젠가는 그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독약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