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본향당에 성난 바다 잠재우려 희생된 '애기업개'의 한 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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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애기업개당

‘한반도의 마침표’ 마라도는 북위 33도 07분, 동경 126도 16분에 점처럼 찍혀 있는 작은 섬이다.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리를 이루는 이 섬은 전체 면적이 0.3㎢ 정도로 마치 제주도를 축소해 길게 세워 놓은 고구마 모양을 하고 있다.

 

섬에 가려면 모슬포항에서 정기여객선을 타면 된다. 시간은 20~30분 정도 소요된다.

 

살레덕 선착장에 도착하면 섬 일대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광활한 초원지대가 섬 전체에 펼쳐져 있다. 어디를 둘러 봐도 거칠 것 없어 눈이 시원하고 가슴 속이 뻥 뚫릴 만큼 세찬 바람이 무척이나 강렬하다.

 

섬을 찾은 길손들에게 있어 첫 순서는 배를 채우는 일. 어느덧 ‘명물’로 자리 잡은 해물자장면 가게들이 섬 중앙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자장면 맛이야 다른 곳과 크게 다를 바 없겠지만 ‘안 먹고 가면 섭섭할 것 같다’는 이유로 한 그릇 뚝딱하는 길손들이 대부분이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해안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면 제일 먼저 ‘애기업개당’ 또는 ‘할망당’ 등으로 불리는 본향당(本鄕黨)을 만날 수 있다. 둥그런 돌담 안에 제단을 마련한 것이 전부지만 이곳에는 섬의 안녕을 지키고 뱃길을 무사히 열어주는 본향신이 모셔져 있다.

 

▲홀로 남겨 진 애기업개의 한(恨)

이 마라도의 본향당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모슬포에 살던 이씨부인이 어느날 물을 길러 가다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울음소리를 따라가던 이씨부인은 수풀 속에서 한 여자 아이를 발견했는데 생모를 찾을 길이 없자 자신이 데려다 딸처럼 길렀다. 세월이 흘러 여자 아이가 여덟 살이 됐을 때 이씨부인도 아기를 낳게 됐다. 여자 아이는 자연스럽게 아기를 돌보는 ‘애기업개’가 됐다.

 

어느 해 봄 모슬포의 해녀 예닐곱명이 테우를 타고 마라도로 물질을 나섰다. 테우에는 이씨부인과 남편, 부부의 아기, 애기업개 소녀도 함께 타고 있었다.

 

물질을 나선지 이레가 지날 무렵 마침내 이들이 섬을 떠나려 하자 갑자기 바람이 불며 바다가 거칠어졌다. 날씨는 나아지지 않았고 일행은 며칠 동안 섬에 갇히게 된다. 그러던 중 한 해녀가 ‘사람 하나를 두고 가지 않으면 아무도 나가지 못 한다’라는 꿈 이야기를 꺼냈다. 일행은 의논 끝에 애기업개 소녀를 희생시키기로 하고 그녀를 속여 섬에 홀로 남겨두고는 테우에 몸을 실었다. 신기하게도 바다는 더 이상 거칠어지지 않았다.

 

3년이 지난 뒤 마라도를 찾은 일행은 모슬포가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서 애기업개 소녀의 유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외로움과 굶주림에 지쳐 죽은 듯한 그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워 일행은 유골을 추려 장사를 지내고 당을 만들어 해마다 제사를 올렸다. 그곳이 바로 애기업개당이다.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와 교회, 절 등이 있는 마을을 지나 남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대한민국 최남단’이란 글이 새겨진 비(碑)가 나온다. 앞쪽 바다는 섬 하나 없는 망망대해. 비 옆에 서서 거친 바람과 파도를 마주하면 이곳이 바로 우리 땅의 끝이자 시작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최남단비 옆에는 ‘장군바위’라 불리는 기암이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우뚝 솟은 모양이 마치 마라도를 지키는 든든한 수호신과도 같다. 실제로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신성하게 여겨 그 주위에서는 말과 행동에 주의를 기울인다고 한다. 또한 이 바위에는 ‘하늘에 살고 있는 천신이 땅에 살고 있는 지신을 만나기 위해 내려오는 길목’이란 전설도 전해진다.

 

최남단비를 지나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 마라도 등대가 높게 솟아 있다. 고깃배들의 길잡이가 되는 이 등대는 세계 각국의 해도에 반드시 표시될 만큼 매우 중요한 이정표다.

등대를 지나면 선착장으로 향하게 되는데 이 해안길의 풍경이 단연 압권이다. 넓은 초원 너머로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가파도와 산방산, 그 뒤로 한라산이 차례로 포개져 있는 모습은 자못 신비롭기까지 하다.

 

마라도는 걸어서 1시간 정도면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에 쫓겨 스쳐가듯 탐방을 마친다면 이 섬의 참모습을 만나기 어렵다. 배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 섬 구석구석까지 돌아보며 여유를 즐기고 한 점 장애물도 없는 태평양을 두 눈 가득 담아 보는 것은 어떨까.

 

강민성 기자 kangm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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