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단둥에서 본 신의주 경제특구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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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구 간판뿐…꽁꽁 얼어붙은 동토'

북한이 지난해 9월 12일 제2의 홍콩을 만든다는 슬로건하에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초유의 경제실험을 선언했던 신의주 경제특구.

‘사회주의 나라에 자본주의 섬’을 세우려는 파격적인 조치로 세계의 관심을 끌었던 신의주 특구는 양빈 초대 특구행정장관의 낙마와 핵개발 시인 파문 등으로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중국 선양지역을 방문한 제주관광홍보단과 동행한 기자는 홍보단과 함께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신의주와 마주하고 있는 국경도시 중국 단둥시를 찾았다.

‘북한 특수’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있는 압록강 주변 단둥과 유람선을 타고 둘러본 압록강변 신의주의 모습 등을 담아봤다.

▲활기 넘치는 단둥
선양에서 지난해 11월 개통된 고속도로를 타고 버스로 2시간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단둥의 압록강 주변은 생기가 돌았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세찬 강바람에도 깔끔하게 조성된 강변과 단교는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붐볐다.

중국 선양에서 동남쪽에 위치한 단둥시는 북한 신의주 특별행정구와 압록강 철교(중조우의교)로 연결된 접경지역으로, 북한 진출의 교두보로 평가받는 곳이다.

6.25 한국전쟁 때 절반 이상 뭉툭하게 잘려 나간 압록강 단교와 신의주를 1㎞도 안 되는 지척에 둔 덕에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안보관광지이기도 하다.

특히 신의주 특구 발표 이후 단둥은 가장 눈에 띄는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신의주 특구 개발 추진을 당분간 유보했다는 소식이 들리는 상황에서도 단둥지역의 ‘북한 특수’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히 곳곳에서 감지됐다.

우리 일행을 안내한 조선족 가이드 김영춘씨는 “압록강 주변의 밀밭을 개발해 고층 건물들이 속속 신축되는 등 개발붐이 가속되고 있다. 특히 단동지역 땅값이 2~3배로 껑충 뛰었고 가뜩이나 비싼 압록강 주변은 훨씬 더 비싸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신의주 특구도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개발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단둥은 2~3년내 더 급속한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회색의 도시’ 신의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단교를 둘러본 후 압록강 유람선을 타고 북한 국경 5m 앞까지 다가간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강변 너머 적막에 휩싸인 신의주를 보고 내뱉은 말이다.

다른 누군가는 “신의주는 마치 죽은 도시 같다”고까지 표현했다. 사실이 그랬다.

전날까지 얼어붙었던 강이 마침 풀린 탓에 설렘과 기대가 더 컸던 우리 일행은 너무나 초라하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신의주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듯 거의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강변에 정박된 수십여 척의 어선들과 화물선들은 마치 버려진 폐선처럼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고 강변 너머로 시야에 들어오는 신의주의 거리는 날씨만큼이나 꽁꽁 얼어붙은 동토였다.

인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거리와 건물에는 붉은 글씨로 ‘21세기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라는 슬로건만 넘쳐날 뿐 도저히 살아 있는 도시라 할 수 없었다.

누군가가 “그래도 태양은 봤지 않느냐”며 같은 민족으로서 느끼는 비애감을 씁쓸한 농담으로 위로했다.

‘한적하다 못해 나른한 신의주에는 한낮에도 자동차가 거의 없고 밤에도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한 외신이 최근 전했던 르포기사가 믿겨질 수밖에 없었다.

압록강에서 본 모습이 신의주의 현재 실상이라면 신의주는 특구라는 간판만 단 채 여전히 궁핍한 북한의 일개 도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신의주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다는 말에 우리 일행은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북한 병사와 짧은 만남
안타까운 신의주를 뒤로하고 북한 병사를 바로 만날 수 있다는 후산창청(虎山長成)으로 향했다. 단둥시내에서 동북쪽으로 25㎞ 떨어져 있는 후산창청은 만리장성의 동쪽 끝으로, 북한 의주군을 바로 마주보고 있는 국경지역이다.

그곳에 이르자 ‘일보과(一步跨)’라는 표지석이 눈길을 끌었다. ‘한 발짝만 넘으면 북한’이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였다. 국경이 너비 2m 정도의 작은 개울이었다.

개울 앞 언덕에는 허름한 행색의 북한 인민군 한 명이 힘없이 앉아 있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얼어붙은 개울을 건너 말을 건네자 그는 주저없이 다가왔다.

이어 일행 10여 명이 한꺼번에 몰려들며 악수를 청하는 데도 그는 꺼리낌없이 손을 내밀며 대화에 응했다.

‘이름이 무엇이냐’, ‘나이는 몇 살이냐’는 일행의 쏟아지는 질문에 그는 “전주 김씨고, 서른살입네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우리는 제주에서 왔다’고 말을 던지자 “고거 남단에 있지 않습네까”라고 의외로 아는 체를 했다.

비록 있는 대로 껴입은 초라한 복장에 얼굴은 추위를 여실히 느끼게 했지만 그는 환한 웃음으로 남쪽 사람들을 맞았다.

사진을 같이 찍자는 요청에 “곧 통일이 될 겁네다”라며 극구 사양한 그는 우리 일행이 건네준 담배 한 보루를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받아들곤 총총히 북쪽으로 걸어갔다.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데….”
북한군 병사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발길을 돌리던 일행은 분단의 현실에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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