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이중섭거리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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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는 2008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 사업비 7억7214만원을 들여 이중섭거리에 이 화가의 작품을 형상화한 가로등 33개를 설치했다.

야간경관 특화지구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설치된 가로등 상단부에는 ‘황소’, ‘게와 아이들’, ‘해변의 가족’ 등 이 화가의 대표적인 작품이 달려있다.

가로등은 ‘루미나리형’ 10개, ‘간판형’ 23개로 1개 당 설치 비용은 루미나리형이 2660만원, 간판형은 2197만원이다.

가로등 설치 당시부터 이 사업은 경관과 디자인을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인 전시행정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형 미술작품을 형상화한 가로등을 설치하며 전문가 자문을 거치지 않은 점은 두고두고 논란을 낳았다.

이 화가의 작품 ‘물고기와 아이’ 위작(僞作)을 단 가로등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한구고문서협회 고문을 지낸 김모씨가 2005년 가짜 작품을 진품으로 속여 미술품 경매 회사를 통해 판매하다 적발되면서 위작 시비가 일었고 2009년 2월 법원 판결을 통해 위작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수천만원을 들여 이중섭거리에 가짜 그림으로 디자인한 가로등을 달아 관광객과 시민들에게 이 작가의 작품이라고 홍보를 해 온 셈이다.

특히 가로등에 설치된 이 화가의 작품들은 양면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한쪽은 원본 그대로, 반대쪽은 원본과 좌우 대칭으로 제작돼 원본을 훼손했다는 논란도 제기됐다.

2011년과 2012년에는 태풍으로 가로등 7개가 파손되며 서귀포시가 7576만원을 들여 교체 공사를 벌이기도 했다.

급기야 지난해 4월에는 감사원 감사를 통해 이중섭거리 가로등이 순간최대풍속 기준을 충족하지 않고 설치돼 태풍 피해를 입었다며 안전성 확보 방안을 마련하라는 처분이 내려졌다.

서귀포시가 감사원 감사결과 및 시민과 문화계 인사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중섭거리 가로등을 전면 교체하기로 했다.

예산 4억4000만원을 들여 오는 6월 이전에 새로운 디자인의 가로등을 설치하기로 하고 지난 9일 사업을 발주했다.

제주특별자치도 경관심의를 통과한 가로등은 시각적인 부담이 없도록 최대한 심플한 디자인이 적용됐다고 한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현돈 전 제주대 교수(미학 전공)는 2010년 3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제주일보 ‘공공미술 활성화 프로젝트팀’으로 활동할 당시 이중섭거리 답사 후 칼럼을 통해 ‘문화(文化)가 넘치면 문화(文禍)가 되고, 공공(公共)이 넘치면 공해(公害)가 된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오르막 길 초입에서부터 길 끝까지 가로등마다 프린트된 이중섭의 그림이 대문짝만하게 줄지어 걸려있다. 이곳이 이중섭과 관련 있음을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다. 너절하고 어지럽다. 가로등에 덧붙인 장식물도 마찬가지다. 있는 듯 없는 듯 간결하고 절제된 조형미로 시각의 즐거움을 주어야 할 공공미술의 본연에 반하는 공해미술의 표본이다.”

오픈된 야외에 들어서 있는 것은 그것이 자연물이든 인공물이든 모두 공공미술이라는 개념에서 접근해야 한다. 어느 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중섭거리 가로등은 더 꾸미고 채워넣으려는 인간의 욕심에서 시작됐다. 무조건 크고 화려함을 추구하다 시각 공해가 만연한 거리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서귀포시는 이번 가로등은 ‘비움의 미학’에 따라 간결한 디자인을 적용했다고 한다. 이중섭거리가 어떻게 달라진 모습을 보일 지 지켜볼 일이다.
<김문기 사회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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