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 아름다운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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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쯤이나 퇴임하는 대통령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볼 수 있을까?
전세계 언론은 지난 2일 체코의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의 퇴임 연설을 일제히 보도했다. 3일 오전 0시를 기해 물러나는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5분짜리 짧은 연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보도했다.

특히 “제가 실망시켜 드린 국민, 저의 행동에 동의하지 않았거나 저를 증오했던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대목은 듣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까지 했다. “저는 여러분에게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인사를 드린다”고 한 후 “이제 저는 동료 시민으로서 여러분과 함께 할 것”이라고 한 대목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대통령직에 무려 13년간이나 재임했다. 1989년 무혈혁명을 통해 사회주의를 무너뜨리고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1993년 하나의 연방이었던 나라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면서 ‘벨벳 이혼’으로 불리는 이 분리를 반대했던 그는 스스로 자책하며 사임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를 다시 체코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비록 내각책임제 국가이지만 장기 집권이라면 장기 집권을 한 그에 대해 온 국민이 그처럼 따뜻한 신뢰를 보여준 것은 무척 특별한 일이다. 그에게도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었다든가 개인의 인기와 권위에 의존했다든가 하는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총총히 퇴임하는 그에게 국민들이 박수를 보내는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여기서 우리 국민은 금세 우리네 대통령들의 지난 퇴장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까지 광복 60년에 가깝도록 우리 국민도 여러 대통령을 가져 보았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 한 사람 국민들의 박수갈채 속에 퇴장한 이가 있었는가.

초대 이승만 대통령? 그는 국민들에 의해 하와이로 쫓겨 갔다. 윤보선 대통령? 그는 쿠데타에 의해 밀려 나왔다. 박정희 대통령? 그는 총에 맞아 시신이 되어 물러나야 했다. 그후의 대통령들? 그들 또한 우리 모두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썩 아름답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왜 이랬을까? 왜 우리는 좀 더 아름답게 퇴장하는 대통령을 갖지 못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그 중 하나는 대통령의 잘못된 공직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공직이란 무엇인가? 권력을 가진 자리인가? 그렇다면 그 권력이란 또 무엇인가? 공직이란 권력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다. 헌신하고 봉사하는 자리다. 종교인이 세상을 위해 헌신하듯이, 또 사회복지사가 불우한 이웃을 위해 헌신하듯이 공직자도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그것은 누리고 행세하는 자리가 아니다.

또 공직이란 바람과 같은 것이다. 잠시 불어와 스쳐 가는 것이지 항상 머물러 죽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한 마리 나비가 꽃에 잠시 앉았다 훌쩍 떠나듯이, 그렇게 훌쩍 지나야 하는 것이 공직인 것이다.

나는 퇴계 선생님의 공직관을 존경한다. 그토록 조정에서 나오라 해도 그는 사양하고 또 사양했다. 마지못해 나간 후에도 당신이 할 일을 하신 후에는 훌쩍 사직서를 던지고 떠나시곤 했다. 당시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자리 차지하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와 권력다툼으로 아우성을 칠 때다. TV 사극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그런 모습에 비추어 퇴계 선생님의 그런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에 비해 이 나라 대통령들은 어떠했는가. 평소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모르겠으나 일단 대통령 자리에 앉은 후에는 그 얼마나 누리고 호령했던가. 결국 헌신의 자리를 권력의 자리로, 봉사의 자리를 군림의 자리로 삼음으로써 자신의 불행을 자초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자, 이제 며칠밖에 남지 않은 김대중 대통령의 뒷모습을 상상해보자.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평생 노력해 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 전 대통령이나 체코의 하벨 대통령 등과 비교돼 온 김 대통령인데, 그의 퇴장하는 모습은 영 다른 모습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우리는 언제나 대통령의 아름다운 퇴장을 볼 수 있을까? 바람 같은 그 자리를 훌쩍 떠날 수 있는 정말 훌륭한 대통령은 언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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