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물의 혁명'으로 도민 목마름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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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승생 수자원 개발
   
▲‘물의 혁명’ 어승생 수자원개발=제주지역은 우리나라에서 강우량이 가장 많은 지역임에도 토양이 다공질 화산암과 화산회토로 이뤄져 물 빠짐이 좋은데다 연중 흐르는 하천이나 큰 강이 없어 심각한 물 부족을 겪어 왔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물허벅으로 해안가 용천수를 길어다 먹거나, 마을 주변에 고인 빗물을 길어다 먹으며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제주시가 급수인구 증가에 따라 어승생 물을 새로운 상수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던 시기 박정희 대통령이 제주를 방문하게 된다.

박 대통령은 1966년 4월 18일 현오봉 국회의원 등과 함께 제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제주지역의 물 문제 해결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박 대통령은 체류 마지막 날인 20일 정우식 도지사를 숙소인 제주관광호텔로 불러 어승생 댐 구상도를 직접 그린 뒤 건네주었다.

호텔 메모지에 사인펜으로 그린 구상도는 한라산 계곡의 물을 댐으로 막아 이를 수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제주도 수자원개발 기본구상도이다.

이 구상도는 어승댐 건설계획을 구체화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정부의 지원을 수월하게 받아낼 수 있는 촉진제 역할을 했다.

1967년 4월 20일에는 어승생 댐 공사 기공식이 제주시민회관에서 열렸다.

당시 제주일보의 전신인 제주신문은 기공식 기사를 전하고 어승생 댐 공사가 1967년부터 1969년까지 6억6800만원을 들여 어승생과 성판악 수원을 개발해 어승생은 제주시, 애월면, 한림읍 지역에 급수하고 성판악은 남원면, 표선면 지역에 급수하게 된다고 보도했다.

어승생 수원개발사업에는 1967년 6월 24일 국토건설단이란 이름으로 폭력배 500명이 공사현장에 투입되어 4개월 간 공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69년 10월 12일 어승생 수원 통수식이 제주시 산천단에서 거행되었고, 1970년 8월 공사가 완료됐다.

그러나 2차례에 걸친 저수지 바닥 함몰사고가 발생, 1971년 12월 16일까지 보수공사가 이어져 4년 7개월 28일만에 저수용량 10만 6000톤의 저수지가 건설됨으로서 제주도의 물의 혁명을 가져오는 대역사가 이룩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저수지의 이름을 ‘한밝 저수지’라 명명했으나 어느 때부터인지 ‘어승생 저수지’라 부르고 있다.

어승생 저수지는 2006년 8월에 1일 1만5000톤 처리 규모의 정수 시설을 설치해 중산간 지역 21개 마을 및 60개 목장, 그리고 지역 주민 2만5000여 명에게 정수를 공급하고 있다.

어승생 저수지의 개발이 완료되면서 물 기근에 허덕이던 제주지역에 상수도 혁명 시대가 열리게 됐다.

제주도는 이후 어승생 저수지 서쪽 천아오름 부근에 저수량 50만t 규모의 어승생 제2저수지를 건설, 2013년 6월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제주도는 또 1971년 완공된 어승생 제1저수지의 바닥에 흙과 모래 등이 쌓인 데다 차수막이 일부 훼손돼 누수 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준설과 보강 등의 공사를 벌여 2018년까지 저수량은 15~20만t으로 늘릴 계획이다.

   
▲산지천 복개=산지천은 한라산 북사면 해발 약 720m 지점에서 발원해 제주시의 아라동, 이도동, 일도동을 차례로 흘러 하구(河口)인 건입동의 제주항을 통해 바다로 나간다.

산지천은 병문천, 한천과 더불어 제주시의 3대 하천으로, 과거에 산짓내(山地川), 산젓내(山低川) 또는 가락천(嘉樂川)이라고도 불려 왔으며, 제주의 역사를 기록한 여러 고문헌에도 많이 등장하는 하천 중 하나이다.

영주 10경 중 하나인 ‘산포조어(山浦釣魚)’는 산지천의 하류인 포구에서 낚시를 즐기는 모습을 나타낸다.

산지천의 하류 구간인 제주시 일도1동 동문교에서 건입동 용진교 구간(너비 474m, 너비 21~36m)은 1966년 10월부터 1996년 2월까지 약 30여 년간 복개돼 주상복합지구로 이용됐다.

당시 제주일보의 전신인 제주신문은 1966년 10월 6일자 보도를 통해 5일 이뤄진 산지천 복개공사 기공식을 보도했다.

‘순수한 민간 자본으로 총연장 634m, 폭 21~36m로 제주시 1도3동 내파골에서 북쪽 제주어업조합 앞까지 면적 4631평을 2억1953만1000원의 예산으로 착공했다. 이 공사는 1968년 말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이후 30여 년간 사용된 산지천 복개구간은 복개구조물에 안전 문제가 제기되면서 철거가 추진되고 1996년 3월부터 2002년 6월까지 약 6년 동안 총 사업비 365억원이 투입돼 생태하천으로 거듭났다.

현봉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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