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연말 재일교포 선물 봇물...미니스커트 첫 구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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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통해 본 1960년대 후반 제주 사회상은...
 
   
1968년 제주비행장이 국제공항으로 승격, 광복 이후 끊겼던 일본과의 교통편이 부활했다. 또 이 시기 도내 첫 사립병원인 나사로병원과 상업방송인 남양방송 등이 등장했다. 사진은 1969년 10월제주국제공항 관제탑 앞에서 열린 제주~오사카 간 대한항공 취항 기념식 모습(왼쪽)과 제주일보의 전신인 濟州新聞(제주신문)의 국제공항 관련 기사(가운데), 남양방송의 개국 공연 모습(오른쪽).
 

제주일보의 전신인 제주신문은 1969년 12월 22일자에서 세모의 정이 담긴 외국 소포가 우체국 국제우편계 창고에 가득 쌓여 직원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루 평균 300여 개의 외국 소포가 도착했는데, 대부분이 연말을 맞아 재일교포들이 고향 친지들에게 보내는 선물이었다.


초기 가족·친지에게 한정됐던 재일교포들의 송금과 선물은 가난한 고향에 대한 지원으로 확대됐다.


당시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들의 ‘애향의 단성(丹誠)’이 지면을 장식했고, 이들의 고향 사랑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앞서 1969년 5월 1일자에서는 재일교포들의 고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제주전신국의 경우 국제통화 개통 1년 만에 취급 실적이 서울, 부산, 대구 다음으로 4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국제전화 이용자는 그 후로도 매달 20% 가량 증가세를 보였고, 통화국은 일본이 99% 이상이었다.


1968년 8월 29일자를 통해서는 처음으로 제주 출신 사제가 배출됐다는 소식을 알렸다.


고승욱(아오스딩) 신부는 독일에서 서품을 받은 후 이날 고향의 신창천주교회에서 1000여 신자가 모인 가운데 첫 미사를 집전했다.


그해 11월 21일자에서는 주민등록증 발급 업무의 시작을 전했다. 

 

당시 주민번호는 지역번호 6자리와 개인번호 6자리로 구성됐는데, 지역번호 첫 2계단은 시도(제주 21), 다음 2계단은 시군(제주시 01), 마지막 2계단은 읍면동이었다. 개인번호는 첫 번째 성별 번호(남성 1, 여성 2) 다음은 발급 순이었다.


따라서 제주시 일도동에서 가장 먼저 발급 받은 남성은 ‘210101-100001’로, 주거 이동때도 그대로 유지됐다.


초기에는 ‘귀가 가려 있다’ ‘배경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2, 3번씩 사진을 다시 촬영하는 혼란을 겪기도 했다.


한편 1969년 8월 26일자 신문에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이 도내에서 처음으로 구류에 처해졌다는 소식이 실렸다.


당시 부산에서 여행 온 조모씨(24)는 무릎에서 30㎝ 올라간 미니스커트를 입고 제주시지역을 돌아다니다 경범죄 처벌법 위반으로 경찰에 입건돼 25일간의 구류에 처해지는 신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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