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재일동포 사회 여러 모순 해결 위해 한평생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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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언 前 日 하나조노대 교수
   
1926년 제주시 삼양동에서 태어난 강재언 교수가 일본인 아내 타케나카 미에코 여사와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근대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재일 역사학자 강재언 전 하나조노(花園.교토소재)대학 교수(90. 오사카시 스미요시구 거주)는 70-80년대 바다 건너 한국 역사학도들에게는 영웅과 같은 존재다.

 

제주시 삼양동 출신인 그는 재일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1991년 KBS가 제정한 제1회 해외동포상(학술부문)을 수상한데 이어 2006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학술부문)을 받았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황국신민화 교육을 받았고, 대학시절 좌익학생운동을 했으며, 일본으로 밀항해 조총련계 활동을 하다, 1968년 조총련을 탈퇴했으며, 58세(1984년)에 처음으로 대학교수(촉탁)로 임용됐고, 재일민단에서 민족대학을 운영하기까지 드라마틱 한 인생이다.

 

그의 인생이야기가 바로 우리나라 현대사의 모든 아픔을 담고 있고, 불행한 그의 가족사 자체가 우리 모두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 일본 오사카로 밀항했고 고향출신 어른들과 스승의 도움으로 오사카상과대학(현 오사카시립대)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했고 1953년 졸업했다.

 

해방이후 국내에서 한국근대사 연구가 절멸했던 1954년 당시 그가 발표한 한편의 역사 논문이 국내 역사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역사학연구회 기관지인 ‘역사학연구’에 두 번에 걸쳐 연재한 ‘조선봉건체제의 해체와 농민전쟁’이라는 논문이었다.

 

그는 일본의 학자들과 국내의 식민사관에 사로잡힌 학자들이 기술한 동학난을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조직화된 농민들이 낡은 봉건체제를 허물기 위한 밑으로부터의 혁명적 농민전쟁으로 본 것이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이후 국내 역사학계에서는 갑오농민전쟁을 단순한 동학난으로 서술하고 한반도내에서 발생한 청일전쟁의 원인으로 언급되고 있을 뿐이었다.

 

더욱이 그는 일본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했고 역사를 공부한 학자가 아니었음에도 이 논문 한편으로 역사학계에서 주목하고 인정하는 인물로 부상하고, 경제학에서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그 이후 그는 60년간 쉼 없이 강재언 저작선 5권을 포함해 30여권의 저서를 통해 통해 한국근대사와 한국근대사상사에 이어 조선유교 2천년사, 한일교류사를 연구해왔다.

 

특히 그는 재일 한국인 문제의 해결을 위한 이론적 모색과 계몽활동을 열정적으로 전개했다.

 

재일 한국인의 발언대이자 나침반과 같았던 계간잡지 <삼천리>와 <청구>의 편집인을 22년간 맡아오며 재일동포 사회의 여러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실천적적인 지식인으로 평생을 살았다.

 

아울러 그는 한국와 일본, 남한과 북한 사이에 있는 중간자로서 관계개선과 통일에 기여하고자 일본사회에 한국의 참모습을 소개하고, 왜곡된 이미지를 개선하고, 양국의 관계사와 미래에 관한 전망을 제시해왔다.

<강영진 기자>yjkang@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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