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식이 희소식일까?
무소식이 희소식일까?
  • 김현종 기자
  • 승인 201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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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하면서 라디오 방송을 들었는데 어떤 청취자의 사연이 나오고 있었다. 자녀들이 사회생활을 위해 대도시에서 독립해 살고 있는데 오래도록 안부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내용이다. 물론 바쁜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서운함은 감출 수가 없었나 보다.

 

그 사연을 들은 다른 청취자들이 문자를 보내오는데 ‘우리 아이는 돈 필요할 때만 연락해요’, ‘우리 아들은 내가 전화를 해도 대답이 없어요. 전화기에 엄마번호가 찍혀있을 텐데…’, ‘하도 오래 연락을 안 하기에 저도 삐져서 오랜만에 온 전화를 받지 않았답니다. 그랬더니 그때서야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호들갑을 떨더군요’ 등등 구구절절 자녀들의 무소식에 서운한 부모들의 하소연이 이어진다.

 

서운하지 않고 지낼 수 있으면 아무 문제없다. 그런데 부모는 애타게 자녀 소식이 기다려지면서도 무소식인 자녀에게 서운하다는 말도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그렇다면 당당히 요구하라는 말을 해드리고 싶다. 자녀는 아직 그런 부모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연락을 안 하는 것일 뿐이다. 부모가 되어 보면 어떤 마음으로 자식을 키웠을지 알게 되는데, 지금 자녀들은 아직 부모가 안 되어 보았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모르는 것이리라.

 

이것도 가르침이다. 제대로 알려주고 부모가 이 세상에 없을 때 가슴 아프게 후회하는 일이 없게 하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나는 너를 낳고 단 30초도 너를 내 마음 속에서 놓아버릴 때가 없었다. 잠을 자는 무의식 속에서도 너와 늘 함께 숨 쉬었단다. 그런데 어떻게 부모님을 잊고 지낼 수가 있는지 서운하구나” 하고 말해보는 건 어떨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은 그만큼 간절하게 기다리는 마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집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건 그가 배우자이건 자녀이건, 그 외의 부모나 형제자매건 상관없이 모두 다 소중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리워한다 해도, 떠난 쪽에서 역시 소식을 전하고 싶다 해도 그럴 수 없었던 때 나왔던 아주 간절한 그리움의 표현이 ‘무소식이 희소식’이었다. 교통·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세계 어디에 있건 동시에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졌다. 인터넷망이 세상을 아주 가깝게 만들어 준 덕분이다. 그런데 아직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핑계 삼아 안부를 전하지 않는 건 부모가 제대로 바람을 이야기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자녀 입장에서도 부모를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는 24시간이 그렇지 않은 24시간보다 훨씬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낼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자녀에게 전화를 하게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몫이 아닐까 싶다. 좀 더 당당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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