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선진현장을 가다 - ⑩이탈리아(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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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균형발전 통해 지역감정 극복

반도 국가인 이탈리아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국토의 모양새만큼 남북 간 지역감정이 극심한 나라로 손꼽혀왔다. 한때 남부 출신이 북부에서 주거와 취업을 제한받을 정도였다. 또 남북 간 경제력 격차로 인해 더욱 심화된 지역 간 반목은 국가 정체성을 위협할 수준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이탈리아는 서서히 바뀌고 있다. 그 바탕에는 지방분권화 전략을 중심으로 한 지역 균형개발이 자리잡고 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남부 관광지인 나폴리. 해변을 따라 줄지어선 고급 호텔이 세계 3대 미항의 화려함을 뽐내고 있지만 도시의 뒷골목으로 조금만 다가서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나타난다. 미로처럼 얽힌 길을 따라 촘촘히 늘어선 낡은 건물들. 외벽을 치장한 타일은커녕 페이트 자국조차 없이 벽돌들이 앙상히 드러난 주택들은 초행자의 눈을 의심케 한다. 그리고 낡은 주택에는 방 한 칸에 5~6명의 가족들이 궁색한 삶을 꾸려 나가고 있다. 이곳에서 10여 년 동안 무역업을 해온 조연상씨(40)는 “도시 하층민들은 우리의 1970년대 판잣집보다 못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도시의 뒷골목 곳곳에 이러한 집들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나폴리 뒷골목의 빈곤함은 이탈리아 남부 대부분 도시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피렌체 산맥을 따라 북부로 올라가면 상황은 완전히 바뀐다. 밀라노를 비롯한 북부 도시는 대부분 유럽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경제 발전 지역이다.

남북 경제력差·지역감정 극심

통계로 보면 이러한 남북 간 격차는 더 뚜렷해진다. 북부와 남부의 GDP(국내총생산) 차이는 무려 4배에 달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북부는 3만 달러가 넘는 고소득 지역이지만 남부는 1만 달러가 채 되지 않는 셈이다. 실제 유럽연합(EU)은 남부의 캄파니아, 시칠리아, 사르데냐주를 EU내 159개 지역 중 가장 가난한 10개 지역으로 분류해놓고 있다. 남부의 청년실업률은 무려 60% 수준. 그러나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롬바르디아와 베네치아가 있는 베네토 등 북부의 두 지역은 EU에서 가장 부유한 10개 지역에 포함된다.

이탈리아 남부 포메치아시의 전 시장인 안젤로 카프리오티씨(42)는 “이탈리아는 지역 간 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며 이 탓에 북부 지역에서 분리독립 주장이 나올 정도”라며 “중앙정부의 지난 50년간 주요 정책도 남북 지역 간 경제 격차 해소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부의 세금을 주재원으로 삼아 기금을 조성, 낙후된 남부 지역 개발에 나선 중앙정부의 정책은 별다른 성과를 나타내지 못한 채 엄청난 예산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카프리오티씨는 “기금이 중앙 관료들에 의해 집행되면서 지역 산업 개발을 위한 투자자금이 아니라 비효율적 배분 방식인 연줄이나 특정 지역의 특혜성 자금으로 변질되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행정·재정 등 권한 지방 이양
중앙정부 남부 개발 개입 삼가


이러한 반성에서 이탈리아 정부는 1990년대 이후 지역개발 주체를 중앙이 아니라 지방정부로 전환하게 됐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해 중앙정부가 갖고 있던 행정.재정 등 권한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했다.

이후 남부 지역 100여 곳이 산업특별지역으로 지정되고 지방정부의 지역 산업 특성화 전략과 본격적인 외자 유치 노력이 이어지면서 남부 개발은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1997년 일본 혼다가 아부로소주에, 독일의 보쉬사가 바리 지역에, 미국 톰슨사가 시칠리아주 카타냐에 투자하는 등 외국 투자가 줄을 이은 것. 이에 따라 1999년을 기점으로 남부 경제는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성장세로 돌아섰으며 생산률은 북부 지역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던 실업률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남부 개발에 산업기반 시설과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하면서도 개입은 삼갔다.

이처럼 남부의 발전이 가속되면서 골 깊은 지역감정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밀라노 시의회 의장인 기오바니 마라씨(43)는 “지역 균형발전이 가속되면서 자신의 노동력을 착취해 경제 성장을 이뤘다며 북부에 대해 적개심을 나타내온 남부와 자신들의 세금을 빼았아 간다며 불만을 표했던 북부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많이 약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EU에 의해 추진되는 분권에 바탕을 둔 지역균형 전략이 진전돼 아직도 상대적으로 낙후된 남부의 발전이 앞당겨질 경우 지역감정도 결국은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이탈리아는 21세기 국가 운영의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있는 지방분권 추진을 통한 지역개발로 뿌리 깊은 지역감정에 대한 치유책을 찾아내고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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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6사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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