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축복 받은 땅...사진 찍을 수 있어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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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권기갑...제주역사.문화 토대로 실체에 접근하는 데 포커스 맞춰
   

사업가 권기갑씨가 있었다.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20대 때 서울에서 의료기기 제조와 완구 제작 등의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사업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모두 실패했다.

 

29살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그는 세상을 등질까 고민했다. 그러다 뇌리에 제주가 번쩍 스쳤다. 예전에 몇 차례 여행을 갈 때 지상낙원으로 각인된 제주에 무작정 가보고 싶었다.

 

아내와 1살 난 딸을 서울에 놓아둔 채 권기갑은 목포에서 제주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던 제주에 홀로 내려온 권기갑은 생계를 위해 도내 오일시장을 돌며 장돌뱅이로 살았다. 그러길 3년, 어느 정도 생활기반을 닦은 그는 식구들을 제주로 불러들였다.

 

동문시장에 점포를 내고 경제적으로 안정궤도에 오르자 그는 카메라를 어깨에 멨다. 그때가 35살이었다.

 

그는 이미 17살 때 사진과 인연을 맺은 터였다. 일본에 살던 백부에게서 선물 받은 카메라를 들고 바로 옆집에 살던 사진가에게서 자연스레 촬영 기법을 배웠다. 당시 카메라는 집 한 채 값에 육박할 만큼 고가여서 서민들은 쉽사리 접할 수 없는 귀중품이었다.

 

사진을 익힌 그는 3년간 밤섬 유원지에서 친구가 운영하던 펜션 투숙객들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작가 권기갑(60·제주시 화북동)이 있다. “세계 여러 나라를 가봤지만 제주만큼 풍광이 아름다운 곳은 없다”며 “제주는 그야말로 축복받은 땅이고 보물 창고”라고 단언하는 그다.

 

최근 만난 권 작가는 “사진은 눈과 마음이 즐거운 예술로 작가는 환희를 맛보고 보는 이는 감동을 느낀다”며 “더군다나 계절과 날씨, 시간에 따라 변화무쌍하고 화려한 옷을 갈아입는 제주를 앵글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행복이 결코 아니”라고 강조했다.

 

“제주는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데다 생물 다양성까지 뛰어나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죠. 제주를 사진 작품으로 창작할 수 있다는 것은 사진가들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권 작가는 38살 때 제주녹색사진연구회에 가입해 제주작가들과 교류를 쌓고 작품 활동에도 더욱 매진했다. 한라산과 오름, 돌담, 바다, 해녀, 조랑말 등 제주의 숨은 비경과 생명들이 차곡차곡 그의 카메라에 담겼다. ㈔한국사진작가협회 제주특별자치도협의회 회장도 지냈다.

 

“제주 풍광은 한마디로 환상 그 자체입니다. 출사에 나선 후 한 걸음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스스로 감탄을 연발하며 셔터를 누르곤 합니다. 단순히 풍경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과 역사에 근거하고 문화와 생태에 입각해 제주의 실체에 접근하는 데 포커스를 맞춥니다.”

 

특히 권 작가는 말(馬)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그는 “제주인과 말은 거칠고 모진 바람과 장마의 굵은 빗줄기, 잦은 태풍을 온몸으로 견디며 이 땅을 묵묵히 지켜왔다”며 “조랑말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제주인의 희로애락 유전자가 엿보인다”고 밝혔다.

 

말과 교감하다 보면 저절로 심오한 성찰과 사색의 세계로 빠져든다는 첨언도 뒤따랐다.

 

권 작가는 15년 전부터 개인택시를 몰고 전국에서 제주를 촬영하기 위해 방문하는 사진작가들을 안내하고 있다. 이들 작가는 한번 내려오면 2~4일 동안 그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 제주 곳곳을 누비며 숨은 속살과 삶의 이야기들을 카메라에 촘촘하게 기록한 후 돌아간다.

 

매년 그의 안내를 통해 제주를 찍는 사진작가만 300명가량에 달한다. 요즘 들어 일부 작가는 제주 말과 돌담, 바다 등 특정 주제별로 1년에 걸쳐 작업하는 경우도 있다는 전언이다.

 

“이들 작가가 바라보는 제주의 매력은 살아있는 자연과 독특한 문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이 대목에서 권 작가는 제주에 부는 개발의 바람을 경계했고 관광 산업의 방향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그동안 제주 관광 개발은 자연에만 초점을 맞췄지 문화엔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관광객들이 높은 빌딩이나 고급 호텔을 찾아 제주에 오는 게 결코 아니잖아요. 자신들의 지역에는 없는 초가와 해녀, 오름을 구경하고 그곳에서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을 체험하기 위해 찾아오는 겁니다. 지금 제주 관광은 스스로 경쟁력을 깎아먹는 셈이죠.”

 

그렇다면 축복받은 보물섬을 지키고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성장하기 위한 대안은 과연 뭘까.

 

“코앞에 보이는 관광객 숫자놀음에 도취돼선 미래가 암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주를 형성하는 자연의 근간과 도민 고유의 삶의 원형만은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는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것, 여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긴 호흡으로 접근하고 도민 공감대가 수반돼야 합니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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