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짙푸른 망망대해와 해안절벽이 빚어낸 장엄한 경관 ‘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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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큰엉 해안경승지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큰엉 해안경승지는 올레길 5코스의 출발점인 남원포구를 지나1km 정도를 걸으면 찾을 수 있다.이곳은 망망대해와 어우러진 해안절벽이 장관을 연출한다.

올레길 5코스는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제주의 여러 올레길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해 많은 올레꾼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코스는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포구에서 시작해 동백나무 군락지와 위미항을 지나 쇠소깍에 이르는 약 15㎞의 길이로 이뤄져 있다.

 

남원포구를 출발해 1㎞ 정도 걸다보면 드넓은 망망대해와 어우러져 장엄하기까지 한 모습을 연출하는 해안절벽을 마주할 수 있는데 이곳이 바로 ‘남원큰엉 해안경승지’이다.

‘엉’이란 ‘바닷가나 절벽 등에 뚫린 바위 그늘이나 굴’을 의미하는 제주어로, 큰 바윗덩어리가 아름다운 해안을 집어삼킬 듯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언덕이라고 해 ‘큰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해안을 따라 조성된 1.5㎞에 이르는 산책로는 짙푸른 바다의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여유롭게 사색을 즐기거나 이성과의 데이트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산책로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밌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산책로 양 옆을 둘러싼 나무들이 조화롭게 맞물려 정면에서 바라보면 한반도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형상 너머에는 수평선이 마치 휴전선과 같이 펼쳐져 신기함을 더한다.

 

▲쇠 떨어지는 고망=산책로 중간에는 바위틈으로 거대하게 뚫린 구멍을 찾을 수 있다. 일명 ‘우렁굴’이라 불리는 이 구멍에는 그 이름과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

 

과거 이 지역에서는 큰엉 일대 들판에 소들을 방목해 키웠다고 한다. 여름이 다가오면 소들은 더위를 피해 그늘을 찾아 숲속으로 들어가고는 했는데 이 때 바위틈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이 큰 구멍으로 떨어져 죽었다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이곳을 ‘쇠(소)가 떨어지는 고망(구멍)’이라고 해 우렁굴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밖에도 큰엉에는 미국의 유명한 ‘대통령 얼굴 바위’와 견줘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자연스런 멋을 지닌 ‘인디언 추장 얼굴 바위’와 사나운 호랑이가 입을 벌린 듯한 모습의 ‘호두암’, 마치 여성의 젖가슴과도 같은 모양의 ‘유두암’ 등이 있어 길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위미 주민들의 휴식터 ‘조배머들코지’=큰엉을 나서고 올레길 5코스를 계속 걸어 위미항에 도착하면 ‘조배머들코지’라 불리는 눈에 담아두기 좋은 장소를 마주하게 된다.

조배머들코지는 구실잣밤나무가 자생하는 풀숲으로 ‘조배’는 구실잣밤나무를, ‘머들’은 돌무더기를, ‘코지’는 바다로 돌출돼 나온 지형인 곶을 뜻한다.

 

그 이름도 낯설 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사실 이곳은 위미리 주민들에게는 오랜 여름철 피서지일 뿐만 아니라 고향에 대한 사랑과 자존을 일깨우는 정신적 요람이다.

이곳에는 마을 주민들이 간직해온 가슴 아픈 전설이 전해진다.

 

원래 이곳에는 70척이 넘는 기암괴석들이 있었다. 그 형상이 비룡형(飛龍型) 또는 문필봉형(文筆峰型·책을 받아 앉아서 공부하는 상)과 비슷하다고 해 마을 사람들의 신앙적 성소가 돼 왔다. 그러던 중 100년 전 쯤 일제강점기 때 한 일본인 풍수학자가 이 거석을 보고 큰 인물이 나올 곳이라 여겨 그 맥을 끊기로 결심한다. 그는 당시 마을의 한 유력자를 찾아가 “저 기암괴석이 당신의 집을 향해 총을 겨누는 상이라 당신네 가문이 번창하려면 거석을 파괴해야한다”고 꼬드겼다.

 

결국 일본인의 속임수에 넘어간 유력자는 이곳의 거석들을 폭파시키고 말았는데, 당시 거석 밑에는 용이 돼 승천하려던 늙은 이무기가 붉은 피를 뿜으며 죽어있었다고 한다.

이 일이 화근이 됐는지, 그 뒤 위미리에는 큰 인물이 나오지 않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이 나왔다가도 좌절하거나 시름시름 앓다가 단명했다고 한다.

 

‘위미에서 큰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은 주민들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이에 1997년 위미리개발협의회가 중심이 돼 조배머들코지를 복원을 계획하고 당시 남제주군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주민들이 합심해 100년 전쯤 파괴된 후 그대로 부근에 남아있던 바위들을 추슬러 조배머들코지를 복원했다.

 

강민성 기자 kangm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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