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중인 중앙·지방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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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 배재대학교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이번 메르스(MERS) 전염병 사태는 한국 사회의 여러 부정적 측면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정치적으로 두드러진 것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협력 부재이다. 지난 6월 4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메르스 관련 긴급기자회견 이후 이에 대한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잘한 일이라고 하고, 다른 편에서는 중앙정부를 무시한 월권행위라며 비판하고 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은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협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중앙정부, 지방정부, 그리고 시도 교육감 사이에서의 갈등 혹은 협력 부재 현상은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정치적 현상이다. 작년 말 교육부와 서울시 교육감 사이에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를 두고 벌어진 힘겨루기, 올해 발생한 누리과정 무상보육 예산 편성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자체, 시도 교육감 간의 갈등, 그리고 무상급식을 둘러싼 경남도지사, 경남교육감, 경남 도내 시장군수들 간의 갈등 등은 좋은 사례들이다. 시도 교육감도 국민의 투표에 선출된 정치적인 자리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모든 사례들은 상이한 수준의 정치권력 간 갈등 내지 협력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혹은 상이한 수준의 정치권력 사이)에서의 갈등은 당연한 일이며, 실제로 지방분권화가 일정 수준 이루어진 국가에서는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다. 수평적으로 나누어진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이 서로 갈등하듯이, 수직적으로 나누어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권력 또한 갈등하게 되어 있다. 권력은 나누어지면 서로 갈등하고 투쟁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아무리 법으로 두 정부의 영역과 역할을 구분하려고 해도 실제 정치 과정과 정책 과정에서 정부 간 영역 다툼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방선거가 부활하고 진정한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20여 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지방분권화는 미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오랜 중앙집권화의 전통과 미약한 지방분권화로 인해 지방정부가 상대적으로 열세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단체장과 교육감들이 독립적인 정치적 기반을 가지게 되면서 점차 자기 목소리를 낼 필요성과 자원을 모두 가지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중앙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던 환경에서 점차 지방의 힘이 강화되면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두 가지 대조적인 해외 사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시사점을 준다.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는 공화국 출발 당시 주정부의 힘이 연방정부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했으나, 시간이 가면서 연방 정부의 힘이 강화된 사례이다. 반면 대표적인 단방제 국가인 영국은 강력한 중앙정부를 가지고 출발했으나, 지방자치가 발전해 가면서 지방정부의 힘이 강화된 사례이다.

이 두 가지 사례에서 찾을 수 있는 시사점의 하나는 중앙-지방 간 관계가 늘 균형을 찾아 진화하고 있으며, 그 균형점 또한 고정된 것이 아니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또 한 가지 시사점은 이러한 진화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권력을 가진 쪽이 자발적으로 권력을 양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연방정부가 주정부의 권력을 빼앗는 과정에는 많은 갈등과 어려움, 심지어 내전까지 있었으며, 미국정치의 역사는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 관계의 진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영국에서 지방정부의 권력 강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지방정부와 수장의 끊임없는 혁신과 주도권 행사 노력이었다.

한국은 현재 지방 열세 상황에서 중앙에 대한 지방 권력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것은 시대적 흐름이며, 지방선거가 계속되는 한 멈출 수 없는 추세이다. 따라서 각종 자치단체와 그 수장에 의한 혁신과 주도적 역할 수행은, 그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서, 이러한 진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러한 중앙-지방 간 관계의 변화와 진화 과정을 적절하게 수용함과 동시에, 양자 간 갈등을 조정하고 협력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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