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선진현장을 가다 - ⑪ 이탈리아(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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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민이 지역 관리해야 효과적"

이탈리아 북부의 대표적 도시 밀라노. 세계적 섬유.패션 도시로 명성을 얻고 있는 이곳은 쇼핑가로도 유명하다. 시청과 두오모 성당에서 시작되는 몬테나포레오네 거리에는 루이비통과 아르마니, 버버리와 베네통 등 유명 패션점들이 경쟁하듯 길게 늘어서 있다. 그리고 연간 300만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또한 밀라노와 무역항의 중심지인 베네토, 피아테 본사가 있는 토리노를 잇는 북부 삼각축은 유럽을 통틀어 손꼽히는 경제 중심지로 이탈리아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맡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북부 이탈리아의 인구는 국가 전체의 45%에 지나지 않지만 생산량은 70% 이상을 차지한다. 인구 130만명의 밀라노시가 국가 전체 생산의 12%를 점할 정도다. 그러나 북부 이탈리아의 이러한 번영 뒤에는 남부 이탈리아의 상대적 빈곤과 이로 인한 남북 간 지역갈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밀라노시에는 한때 북부 이탈리아의 독립을 주창했던 정당인 북부동맹 본부가 자리잡고 있다. 북부동맹은 1996년 북부 8개 주를 주축으로 독립국가인 ‘파다니아 공화국’을 선언하는 등 한동안 극렬한 분리운동을 폈다. 1990년대 초반 북부 지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북부동맹의 등장은 한편으론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지방분권을 외면하고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해온 이탈리아 정치의 산물이기도 하다.

중앙정부 혜택 놓고 지역갈등
분권 시행으로 상당 부분 해소


밀라노에서 만난 프랑코 파비오씨(52.기업인)는 “중앙정부가 북부에서 휠씬 많은 세금을 거둬 갔지만 혜택은 남부가 더 입게 되면서 북부의 반감이 커졌다”며 “결국 북부가 남부를 먹여 살리는 꼴이 되면서 북부의 분리 독립 주장이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즉 자신들이 내는 세금에 대한 자율권과 지역 발전에 대한 자치권 없이 중앙정부가 매기는 높은 세금을 납부해야만 하는 북부민들의 불만이 수혜지역인 남부 주민들에게 향한 것이다. 물론 중앙정부가 북부의 세금을 재원으로 40년간 시행해온 남부개발계획의 실패도 북부의 반감을 키운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지방분권이 시행되면서 이러한 남북 갈등은 상당히 사라졌다.

밀라노시의회 의장 기오바니 마라씨(43)는 “지방분권이 정착된 이후 지방정부가 각자의 지역발전전략을 수립하게 되면서 중앙에서 거둔 세금 분배를 두고 싸우던 예전의 갈등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4배에 이르는 남북 간 현격한 경제력 차이는 지방분권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애가 되기도 한다. 중앙으로부터 세원의 상당 부분을 지원받아 온 남부에서 지방분권으로 인한 세수 지원 축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중앙과 지방의 경제력 차가 상당 부분 진행된 한국이 ‘지방분권’을 서둘러야 하는 또 다른 이유를 이탈리아에서 찾을 수 있다.

인접국인 독일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이탈리아의 지방분권이 지체된 주된 이유는 권력을 내놓지 않으려는 중앙 정치권의 강한 집착 때문이다. 따라서 1990년대 중반 이후 빛을 보기 시작한 이탈리아 지방분권의 역사는 중앙과 지방의 끈질긴 투쟁의 결과이기도 하다.

2차세계대전 이후 정권을 잡은 기민당은 사회당과 공산당 등 좌파 정권의 요구에도 1960년대까지 지방의 자치권을 묵살해 왔다. 하지만 주택.육아.교통.환경문제 해결에 대한 시민들의 자치권 요구가 높아지고 지식인들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중앙집권의 비효율성이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1970년 첫 지방선거가 실시됐다. 이후 지방정부와 의회가 구성되는 등 지방자치의 토대가 마련되기는 했지만 당시 이탈리아의 자치는 한국처럼 반쪽 수준에 그쳤다.

중앙정부가 지방의 권한 확대를 막기 위해 지방정부가 제정한 법률의 승인권을 가진 집행관 제도와 행정조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제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의 필수 조건인 재정 또한 중앙정부의 통제 아래 묶어 두었다. 당시 지방정부가 사용할 수 있던 재원은 전체 지방예산의 30%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남부 포메치아시의 전 시장 안젤로 카프리오티씨는 “재정 자립이 되지 않으면서 지방정부는 자체적인 발전전략을 세우기보다는 중앙의 관료나 유력 정치인을 통해 국비를 더 받기 위한 경쟁에 나서면서 중앙 권력이 오히려 강화되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말했다.

국가 발전 위한 지방분권 노력 계속

그러나 이탈리아의 중앙집권체제는 1990년대 이후 권력 집중에 따른 각종 부패 스캔들과 이로 인한 중앙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 유럽연합(EU)의 강력한 지방분권화 정책이 맞물리면서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된다. 1993년 기초단체장에 대한 직선제가 도입되고 국세 축소 및 지방세 확대가 이루어지면서 실질적인 지방자치가 시작된 것.

특히 2001년 헌법에만 명시돼 있던 지방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지방에 넘겨주는 조치가 진행되면서 이탈리아 중앙정부의 권한은 국방.외교 등으로 상당히 축소됐다. 대신 지방의 권한은 입법권까지 대폭 늘어났다. 또 실비오 베를르스코니 현 수상이 21세기 국가발전전략으로 지방화를 내세우면서 지방분권을 위한 이탈리아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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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6사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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