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포럼] 태풍에 무너진 추석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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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한 방의 위력이 이렇게도 엄청날까. 불과 낮 몇 시간에 벌어진 참상 앞에 말문이 막힌다. 새삼 자연의 섭리, 자연 재해의 무서움을 떠올리게 한다. 그 자연의 재앙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고 또 초라했다. 이 심술의 날씨는 복구작업은 고사하고 젖어있는 가재도구, 세간마저 마를 겨를조차 주지 않은 채 또다시 비를 뿌려대고 있다.

지난 일요일, 제11호 태풍 ‘나리(NARI)’의 가공할 파괴력에 제주는 몸서리쳤다. 강풍을 동반한 기록적인 폭우는 온 섬을 삽시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뿌리 채 뽑힌 가로수, 엿가락처럼 휜 가로등과 표지판, 맥없이 허물어진 담장과 다리, 휴지조각처럼 구겨진 자동차, 흔적없이 날라가버린 비닐하우스. 폭격맞은 듯 폐허로 변한 하천변, 한순간에 물바다를 이룬 가옥과 빌딩, 밭인지 호수인지 구분이 안되는 침수된 전답들...

시내에서 50년을 살았다는 시민도, 동문시장에서 30년째 장사한다는 상인도 이번 같은 난리는 처음 겪는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태풍이 할퀸 상처는 너무나 크고 깊었다. 무엇보다 다수의 소중한 인명들이 피해를 입었다. 재산피해는 아직도 기초 집계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추석을 코앞에 두고 몰아닥친 자연재앙은 그렇지 않아도 ‘경제문제’ 등으로 힘겨운 서민들에게 업친 데 덮친 격이 되었다. 시장 상인들은 마치 뻘 밭처럼 변해버린 삶의 터전 앞에서 “이제 뭘 먹고 사느냐”며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추석대목에 준비한 제수용품들이 한 순간에 떠내려가 졸지에 길바닥에 나앉게 된 상인들의 참담한 심정을 우리는 헤아릴 수 있을까.

농어촌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올 여름은 유난히 물난리가 기승을 부렸다. 수확을 앞두고 폭삭 주저앉은 비닐하우스를 바라보는 농심은 숯덩이마냥 까맣게 타들었다. 그들의 축 처진 어깨가 더욱 좁아 보인다.

이번 태풍은 1959년 한반도를 휩쓴 ‘사라’를 능가하는 사상 최악의 피해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이는 50m가 넘는 순간 최대풍속에다 하루 500mm의 ‘물폭탄’에 의한 천재(天災)에 인재(人災)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아무리 천재지변을 예측할 수 없다 해도 피해가 난 후에야 허둥되는 안이한 대처가 화를 키웠다. 더 나아가 이번 피해가 난개발로 인해 자초한 측면은 없는 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개발, 사고의 소지를 남겨둔 채 허술하게 마무리된 공사, 사전 위험지구 진단이나 하상(河床) 관리의 소홀 등 재난예방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기회가 돼야 할 것이다.

이제 며칠후면 추석이다.. 태풍의 생채기에 신음하는 우리 이웃들에게 올 추석은 잔인한 명절이 될 것 같다.

천재냐 인재냐의 구태의연한 논란에 앞서 우리 사회가 우선 해야 할 일은 피해민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성원을 보내며 하루 빨리 수마의 상처를 딛고 일어나도록 격려하는 일이다.

이런 때,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일은 이 땅에서 함께 숨쉬며 살아가는 인연 공동체로서의 한몫이다. 이의 실천에는 무엇보다 사회지도층의 역할이 중요하다. 남이야 어떻든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식의 그릇된 풍조는 문제다. 곤경에 처한 이웃을 돕지 못할망정 과시적인 소비행태로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키우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정치권도 특별재난지역 선포 등 지원대책에 한 목소리를 내 실의에 빠진 피해민들을 보듬어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한 생색내기 현장 방문으론 곤란하다. 얼른 사진이나 찍고 잽싸게 보도자료를 내는 구태는 보기에도 민망하고 피해민들의 가슴에 두 번 못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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