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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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愚)’는 어리석음이다. 어리석음은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한다.
‘우(愚)’라고 칭한다 해서 모두가 어리석은 것은 아니다. 그것을 자칭(自稱)하는 예도 있기 때문이다. 손 아래 사람에게 자신을 우형(愚兄)이라 하고, 자기의 처를 우처(愚妻)라 말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천하의 제갈량도 출사표에서 스스로를 어리석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모두가 겸양에서 나온 말들이다.

이와는 달리 진짜 어리석은 자가 다른 사람을 가리켜 어리석다고 나무란다. ‘공총자(孔叢子)’에 나오는 얘기다.

대구 지하철 방화범 김대한씨도 어리석은 사람인 것 같다. 정신질환자로서 옳고 그름을 분간할 능력이 부족했을 터다. 특히 그는 경찰에서 “혼자 죽는 것 보다는 여럿이 함께 죽는 게 좋다”고 했다니 어리석지 않고는 상상 못할 일이다.

과연 어리석은 것은 김씨 혼자였을까. 한 우자(愚者)의 단순 방화로 몇 분 만에 370명 이상이 사망.실종되고, 140명 이상이 부상당하도록 방치한 이 전대미문의 대구 지하철 대참사와 관련해서는 김씨 말고 우자(愚者)가 없었을까.

선진국과는 달리 지하철의 의자.바닥재.내벽.벽체 내 삽입 재료 등이 인화(引火)와 유독가스의 주범인 데도 그대로 내버려 둔 것은 현명한 처사가 못 될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숱한 다중이용시설 참사를 경험했음에도 지하철의 구조적 참사 요인들을 방치한 당국자들은 우자와 현자 중 어느 쪽에 속하는지 반성해 볼 만하다.

일신의 부와 이익, 당리와 당략, 명예와 집단이익을 위해서는 그토록 당돌하고, 똑똑하고, 영리한 일부 정치인과 관료들이 하루 650만명의 생령을 내맡긴 지하철 참사 예방에는 왜 이렇게 우둔했는지 믿을 수가 없다. 지하철이 위험하니 전반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미리 촉구한 현자(賢者)가 있었던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법구경(法句經)은 “어리석은 사람과 함께 하기 어려운 것은 마치 원수들과 함께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대구 지하철의 수백명 생령들은 어리석은 사람들로 인해 연옥과 같이 달구어진 객차 박스 속에서 죽어 갔다. “한국은 멀었다”는 외국의 평이 정확하다.

전한(前漢) 시대의 전국책(戰國策)에는 “어리석은 자는 이루어진 일조차도 마음이 어두워 알지 못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음에도 마음이 어두워 자신들이 이미 했어야 할 일을 알지 못하고 남의 탓만하는 관료나 정치인들이 있다면 정말 어리석은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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