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시험 답안지에 담긴 국가경영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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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요즈음 부쩍 인적자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백만의 매뉴얼도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사람의 손길과 마음이 닿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직장에서 유능한 인성의 좋은 인재를 선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선발시험은 채점의 편의를 위해 사지선다 내지 오지선다형 출제를 하니 능력과 인격과 지혜를 가늠하기는 어림도 없다.

더구나 기계문명에만 의지하고 물질만능의 풍조, 실용성에만 치우치다 보니 생각하는 교육, 이상과 소신을 물어보는 시험은 뒷전으로 밀리고 암기를 통해 찍어내는 시험에만 익숙해졌다.

고려 광종 때부터 시행됐던(958년) 과거제는 조선시대에 확대돼 우리 실정에 맞게 고치고 다듬어서 최고 권위의 인재 선발 시스템으로 정착시켰다. 개인의 능력을 중시했던 과거제는 자연스럽게 신분 이동의 통로가 됐다는데 근대성을 내포하고 있었고, 공부와 교육의 중요성을 더욱 고양시킴으로써 지식문화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켰음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후대 역기능적인 측면도 없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관료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공직자로 갖춰야 할 도덕적 기본 자질은 물론 국가운영의 현안과 고충을 위한 해답과 지혜를 얻으려 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인재 선발책이었음은 분명하다.

과거시험 답안지를 보면 답안의 내용도 훌륭하지만 임금의 질문의 솔직함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 예로 조선왕조 제11대 임금 중종(1488~1544)은 1515년 과거시험에 이런 문제를 냈다. “내가 부족한 덕으로 다스린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나라의 기강과 법도가 세워지지 않으니 요순시대 정치에 이르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대책을 논하라”는 질문에 조광조는 거침없이 그의 소신을 장문의 답안지에 피력했다. 첫째, 임금은 하늘의 이치로 사람을 인도하고 감화시켜야 하는데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둘째, 임금이 하늘이라면 신하는 사계절이라 할 수 있는데 신하들을 잘 활용해 조화의 정치를 해야 한다. 셋째, 명도(明道)와 근독(謹獨)인데 항상 도를 밝히는 데 전념하고 누가 보나 안 보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늘 삼가며 지켜야 할 도리를 강조했다. 마지막 구절에는 죽음을 무릅쓰고 이 답안을 썼다고 비장의 각오로 표현했다. 이와 같은 젊은 유생들의 생각은 참신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집념을 가지고 공부했던 지식과 지혜를 동원해 열정을 다해 답안을 작성했다. 정몽주의 문무병용의 방안, 정약용의 오객(五客)이라는 제목으로 인재를 재능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는 답안, 박세당의 세금 경영 등 재정을 국가시스템으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제언 등 그들이 작성한 답안지, 즉 시권(試券)에는 영혼이 있고 감동이 느껴진다.

당시 임금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시제(試題)는 나라의 안정적 발전에 기여할 양질의 인재, 사회 안전망의 강화, 신하와 백성들과의 화합, 왕도정치의 실현 등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국방·외교를 총 망라해 시대정신에 따라 다양했다. 과거시험을 통해 국가경영의 지혜를 모으는 것이었다.

지금의 대학입시 또는 국가고시에 식견과 경륜을 묻는 항목이 없는 것은 전통의 단절이다. 우리는 늘 온고지신을 외치지만 그것의 구체적 실천과 적용에는 소홀하다. 현행 시험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때로 그 대안은 결코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전통 속에 그 해답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이고, 역사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시권을 소재로 하는 전시를 통해 양질의 한국적 가치를 발굴하고 또 알려야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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