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서예 알고 전각 모르면 립스틱 안 바른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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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가 겸 서예가 김상헌...전각은 서예와 조각, 회화가 결합된 아름다운 예술

“서예를 알면서 전각은 모르면 여성이 화장하면서 립스틱은 바르지 않은 격입니다.”

 

최근 제주도문예회관 제1전시실에서 만난 전각가이자 서예가 김상헌(75)은 “전각은 문자 탄생과 함께 바위에 새겨졌던 문자예술의 시초다. 서예와 조각, 회화가 결합된 종합예술”이라며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서예를 하는 사람은 누구나 전각을 갈망한다”고 말했다.

 

이곳 전시실에선 지난 2일부터 7일까지 김상헌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2007년 서울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전시와 2009년 서울 인사동 라메르갤러리 전시에 이은 세 번째 개인전으로 그가 지난 6년 동안 작업한 전각 작품 70여 점이 도민과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김상헌은 전각 분야 대한민국 전통명장이다. 그는 “1997년 서예 대가 소암(현중화) 선생을 타계 40여 일 전에 뵀더니 당신 작품을 한 점도 못 남겼다고 하셨다”며 “서예가들이 글씨 써놓고 다른 사람이 만든 낙관을 찍기 때문에 온전한 자신의 작품이 아니란 의미였다”고 전했다.

 

전각은 문자·그림을 돌 등에 새긴 후 붉은 인주를 묻혀 종이에 찍은 인영(印影·도장 찍은 형상과 자취)을 감상하는 예술로, 김상헌이 전각으로 낙관을 제작해준 예술가만 200명이 넘는다.

 

서예·전각단체인 월봉묵연과 제주작가협회를 지도하는 김상헌은 “제자들에게도 서예와 전각을 병행 연마하도록 가르친다”며 “서예만 하고 전각을 모르면 마치 여성이 얼굴 화장 다 해놓고 마지막으로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지 않은 꼴”이라고 지적했다. 월봉(月峰)은 그의 아호다.

 

“전각은 지극히 아름다운 예술입니다. 돌이나 뼈 등 새김의 재료에 따라 서로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고 돌에 글자를 새길 경우 수천 년을 가는 무변(無變)의 상징이라는 점도 끌리죠.”

 

김상헌은 충청북도 영동 출생으로 젊을 땐 서울에서 직장을 다녔었다. 41살에 제주에 정착한 김상헌은 6년간 학습지 제주지사를 운영하고 입시학원도 경영했다. 제주를 제2의 보금자리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토박이들의 소박하고 넉넉한 인심이 마음에 들었다”고 회고했다.

 

김상헌이 서예와 전각에 입문한 때는 1997년으로 당시 57살의 늦깎이였다. 하지만 7살 때부터 14살까지 서당에 다니며 한학과 서예를 공부했던 ‘가락’은 서예와 전각 학습에도 유효했다.

 

그는 삼농 김구해 선생의 문하에서 전각을 배우며 동료 제자들과 삼연회를 결성했고 2년 후엔 제주전각학연구회 창립을 주도해 창립전과 2차례 교류전 등을 마련해 놓고 손을 뗐다.

 

이어 김상헌은 서울 정문경·여원구 선생 등을 사사해 매주 한번 꼴로 상경하며 전각을 연마한 끝에 제주도서예대전 사상 첫 전각 초대작가에 선정됐고 대한민국서예문인화대전을 비롯한 각종 공모전 초대작가에도 이름을 올렸다.

 

2008년 그랑프리미술대전 전각 대상을 받았고 2009년에는 한국전통예술진흥협회가 지정하는 대한민국 전통명장 중 전각 분야 제1호로 지정됐다.

 

김상헌은 “지금도 여원구 선생을 꾸준히 찾아뵙고 가르침을 얻고 있다”며 “어느 분야든 죽기 전엔 배움에 끝이 없다. 이번 작품전도 예술적 학습의 중간 점검과 같은 자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동물 뼈나 기와, 옥에 글씨를 새기는 갑골문과 와당, 옥석각 등 폭넓은 전각세계를 구사하고 있다.

 

“갑골문을 위해 소·돼지 엉치뼈를 구한 후 삶고 우려내고 식초에 담가 기름 빼고 방부 처리하는 데만 꼬박 3개월 걸린다. 장문(長文)을 돌에 새기는 데도 마찬가지로 3개월은 족히 소요된다”고 설명한 그는 “전각은 결코 쉽지 않은 인내와 고통을 요구한다”며 웃었다.

 

여기에다 김상헌의 이번 전시는 대부분의 서예전이나 전각·서각전이 대필(큰 글씨) 중심인 데 반해 소필(작은 글씨) 위주 작품들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자리란 평가다.

 

김상헌은 “후학 양성에 여생을 바치겠다. 제주 작가들이 중앙무대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겠다”며 “글씨와 새김을 함께 연마할 때 진정한 문자예술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제주를 향한 애정도 숨기지 않았다. “자연환경 파괴가 심각합니다. 제주가 죽고 있어요. 전각과 서예를 통해 사람들에게 가치를 일깨우는 방식으로 제주를 살리는 데 기여할 생각입니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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