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의료기기 총판 사업으로 매출 100만달러 올려
(21)의료기기 총판 사업으로 매출 100만달러 올려
  • 김태형 기자
  • 승인 2015.0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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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향 세계한인무역협 부회장...스페인 바르셀로나에 30년 이상 거주 제주인
   
‘제주에서 태권도를 하던 섬소년, 정열의 도시 스페인에서 사업가로서의 열정을 불태우다.’

이국만리 스페인에 정착한지 30년 이상된 김부향 세계한인무역협회 부회장(60). 제주시 애월읍 어음1리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초등학교 때 태권도를 시작하면서 운동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은 꿈나무였다. 이후 한림공고에 들어가서는 종목을 사격(권총)으로 바꿔 제주도 대표로 전국체전에 출전하는가 하면 대학에서도 사격선수로 활동했다.

▲유학의 길에 오르다=인천체대 졸업 후 서울에 있는 손해보험회사 본사에 입사, 남보다 더 열심히 뛰겠다는 각오와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학벌을 중시하는 직장 분위기 등으로 적응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이를 악물고 3년 간 근무했지만 ‘내 갈 길이 아니다’라는 확신을 갖게 되자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그동안 생각해온 외국 유학 도전에 나섰다. 외국 유학은 체육 전공을 살려 전문성을 갖춘 교수의 길을 걷겠다는 꿈에 대한 도전이었다.

당시 체육 분야 외국 유학 코스는 많지 않아 나라 결정부터 쉽지 않았다. 일본과 미국 등을 신청했지만 최종적으로 스페인으로 결정됐다. 연고는 물론 정보도 제대로 없는 악조건이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국립체육대학에 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20대 후반의 패기를 앞세워 과감하게 유학 길에 올랐다.

스페인에 도착해보니 생활 여건은 여의치 않았다. 거주지인 바르셀로나 산타콜로마는 바르셀로나 중심지에서 10㎞ 떨어진 15만명 정도 사는 도시로, 동양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에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으면서 낯선 외국을 실감하게 됐다.

타국에서의 유학생활은 색다른 재미가 있었지만 학비와 생활비 등을 마련하기 위해 학교에 갔다온 오후부터 매일 고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면서 전공 분야 공부가 쉽지 않았다. 운동하면서 다져진 악바리 근성으로 버텼지만 학점이 떨어지면서 학교와 생활 가운데 선택해야 하는 고비를 맞게 됐고, 결국 학교를 포기하는 좌절을 맛봐야 했다.

▲태권도 전도사로 새출발=학교를 관두게 된 그는 빈 손으로 고국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생활에 매달렸다. 그렇게 아르바이트 일을 하다 우연히 한국인 소유 태권도 도장을 인수하게 되면서 현지에 정착하는 기반을 만들게 됐다.

낯선 이국 땅에서 어렸을 때부터 몸에 익혔던 태권도로 새출발하게 된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바르셀로나 자치대학에서 태권도 강의를 만들어 직접 가르치게 된 것. 당시 그에게 태권도를 배웠던 제자들은 지금은 지자체장과 교수, 의사 등으로 성장해 그를 후원하고 있다.

주특기인 태권도를 통해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보람은 컸지만 변변한 태권도 교재가 없어 이론은 물론 실습 교육을 하는데도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이에 그는 스페인어로 태권도 교재를 집필하기 시작해 ‘기본 태권도’와 ‘21세기 기술 태권도’ 등 2권의 교재를 만들어냈다. 그가 만든 태권도 교재는 남미 대학 교과서로도 채택돼 해당 지역에 태권도를 보급하는데 한 몫을 했다.

그는 “바르셀로나 주립대학에서 10년 동안 태권도를 직접 지도하면서 교재로 책까지 만들게 됐다”며 “당시 제자들이 정계와 학계 등의 사회 저명인사로 활동하고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사업가로 변신하다=태권도를 통해 스페인에 정착하게 됐지만 강의 수입으로는 생활 형편이 빠듯했다. 이에 다른 사업을 구상하던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한국을 찾았다가 남대문 시장에서 여성 블라우스가 외국인 등에게 인기리에 판매되는 것을 보고 스페인에서 한국 의류 도매 및 소매점을 열고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다. 부푼 기대감을 갖고 한국에서 직접 제품을 만들어와서 판매를 시작했지만 유럽 여성들의 체형과 맞지 않아 제대로 옷을 팔 수 없었다. 여기에 현지 소비자들은 지중해 빛깔의 짙은 파란 색이나 빨간 색 등 원색을 주로 선호하는데, 당시 연한 색깔이 많은 한국 제품으로는 선호도를 맞추기 어려운 점도 컸다.

이에 염색으로 색깔을 맞추고 유럽인 체형에 맞게 주문 생산하는 노력 끝에 의류점은 3년 만에 안정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위기가 찾아왔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이후 중국인들의 활발한 진출에 이은 중국산 의류 판매 노점상들이 늘면서 저가를 앞세운 중국산과의 출혈 경쟁도 심화, 폐업까지 고려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그는 선배의 조언을 듣고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살릴 수 있는 업종 전환을 과감하게 선택, 한라산의 이름을 딴 ‘한라누가(HanRa Nuga)상사’를 설립하며 의료기기 총판 사업가 및 오퍼상으로 변신을 꾀했다.

▲제2의 창업에 도전하다=제2의 창업에 나선 그는 한국에서 만든 온열치료기와 마시지침대, 저주파치료기 등 다양한 의료기기 제품을 수입해 스페인 현지 시장을 공격적으로 공략했다.

온열치료기를 비롯한 한국산 의료기기 제품들이 현지 병원과 이용 환자 등에게 호평을 받으면서 홍보관과 대리점 등이 10여 군데로 확대되는 등 사업은 출발부터 성장세를 달렸다. 특히 창업 5년 정도 지나 연 매출이 100만달러 이상으로 늘어나는 등 개인업체 규모로는 안정된 기반을 갖춘 중견업체로 자리잡았다.

그는 무엇보다 ‘성실’과 ‘신뢰’로 승부했다. 현지 고객들과 지역사회에 인정받기 위해 고품질 제품을 공급한 후 철저한 애프터서비스에 충실하면서 한국인과 한국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쌓는데 성공했다.

이에 힘입어 사업은 이후에도 안정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유럽 국가의 재정 위기로 불어닥친 스페인의 경기 침체 여파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그는 의료기기 납품 사업이 위축되면서 또 다른 돌파구로 스페인산 와인과 샴페인 등을 한국으로 수출하는 무역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다음 달에는 내몽고 지역에 개관하는 백화점에 올리브오일과 화장품, 포도주 등을 수출하기로 계약하는가 하면 괌에 이어 중국 시장 진출도 추진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 무역인 & 제주인=그는 10년 전부터 세계 각국의 한인 무역상 조직으로 결성된 해외교포 경제·무역단체인 세계한인무역협회(World-OKTA)에 참여해 현재 서유럽 지역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에 앞서 바르셀로나 지회장을 7년간 맡으면서 우리나라와 유럽 지역 간의 무역 및 투자 진흥을 위해 힘쓰는가 하면 유럽에 거주하는 20~30대 예비 사업가를 대상으로 한 ‘차세대 무역스쿨’을 총괄하면서 후배 무역인 양성에도 지원을 아까지 않고 있다.

그가 그동안 쌓은 연륜을 토대로 차세대 무역스쿨에서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은 ‘현지에서 통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 발굴’과 ‘현지인과의 스킨십’, ‘사업 관련 결정 시 멘토 등과의 다양한 의견 수렴’ 등으로, 자신감을 갖고 유럽 시장에 도전할 것을 조언해주고 있다.

이처럼 30년 넘게 이민 생활과 함께 세계 무역인으로 활동하면서도 그는 ‘제주인’이라는 자긍심을 항상 간직하고 있다. 부모님들로부터 물려받은 강인한 제주 정신이 지금까지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고 사업가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세계한인무역협회 세계대표자대회 및 수출상담회 참석 차 고향을 찾은 그는 비약적으로 발전한 제주를 보면서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고 자랑스러웠다고 말한다. 또 고향에 대한 해외자본 투자 유치를 위해 제주특별자치도 투자자문관을 맡아 협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고향에 돌아가서 후배들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며 “제주가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성장하기 위해 더욱 성숙한 관광 매너를 가졌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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