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상가의 추억과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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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문을 연 제주시 중앙지하상가는 40·50대들에게 추억과 낭만을 간직한 장소였다. 비와 더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만남의 공간이었고, 제주에 처음 등장한 햄버거 가게는 데이트 필수 코스였다. 1990년대 초반에는 브렌따노·언더우드·헌트 등 중·저가 브랜드를 선점해 청소년들로부터 공전의 히트를 쳤다.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까발로’ 운동화, ‘죠다쉬’ 청바지를 밀어내고 글로벌 브랜드를 유행시켰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지름신’을 부르는 패션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랬던 지하상가에 최근 전운이 감돌고 있다. 제주시와 상인 간 첨예한 대립을 불러온 상가 개·보수는 도화선으로, 입찰 방식 전환은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가 됐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단초는 지하도를 건설할 예산이 없었던 제주시가 수익형 민간투자 사업(BTO)으로 사업을 한 데서 시작됐다. 건설을 맡은 A개발은 공사비를 조달하기 위해 준공 전부터 임대가 아닌 분양 방식으로 점포를 내놓았다. 상인들은 입점할 당시 아파트 한 채 값에 달하는 거금을 주고 A개발과 계약을 체결했다.

A개발이 운영하던 지하상가는 ‘20년 후 기부 채납’ 조건에 따라 2010년 제주시 소유로 완전히 넘어왔다. 시 소유의 공유재산이 됐지만 누구나 장사를 할 수는 없었다. 우선 상인회의 추천을 받아야 했고, 상인회 의사기구인 이사회가 제주시에 요청해야만 입점이 가능했다. 현재 382개 전 점포가 이 같은 수의계약 방식으로 입점해 장사를 하고 있다.

수의계약은 불법 전대(재임대)와 거액의 권리금이 오가는 비정상적인 상거래를 파생시켰다. 또 일부 상인들의 점포 독점과 기득권 행사와 같은 특혜 시비도 낳았다.

점포당 연 평균 250만원의 저렴한 임대료를 받고 있는 제주시가 올 연말 70억원을 들여 개·보수 공사를 하는 만큼, 투명하고 공정한 계약 전환은 당면 과제가 됐다.

제주시가 지하도상가관리조례 개정을 추진하는 이유다. 조례 개정의 목적은 상인회가 맡아온 수의계약을 대신해 행정이 주도하는 공개 경쟁입찰로 전환하는 데 있다. 공개 경쟁입찰의 기본 골격은 낙찰이 되면 기본 5년에 연장 5년 등 최대 10년까지 영업을 보장할 계획이다. 또 기존 상인들의 피해가 없도록 향후 5년간 현재의 수의계약을 인정하는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단, 영업권 양도·양수 시 주고 받았던 권리금은 무효화할 방침이다. 일부 상인들은 이 같은 계약 방식 변경으로 억대의 권리금을 보장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종전대로의 수의계약을 바라고 있다. 만약 공개 입찰로 가게 되면 기존 상인들에게 ‘우선권을 달라’는 요구도 나왔다. ‘공개(공정) 경쟁(입찰)’을 도입하려는 제주시는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고객들의 다양한 수요에 발 빠르게 대응, 선호 브랜드를 유치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상권 활성화를 이끌어 낸 것은 상인들이다. 상인들은 지금껏 잘해왔던 것처럼 ‘시장(상인) 자율’에 맡겨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제주시는 수의계약이 불러온 거액의 권리금 폐단과 이에 따른 영업권 양도·양수가 되풀이되면 ‘공유재산이 사유화될 수 있다’며 강경 모드를 보이고 있다.

지금의 지하상가는 말 그대로 폭풍전야다. 계약 방식 변경 시 언젠가는 떠나야 할 상인이나 새로 들어올 입주자 모두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2013년 진주 중앙지하상가가 경쟁입찰 전환 시 초기에 빈 점포가 나오고 폐업이 속출한 이유는 기존 상인들의 거센 반발이 불러온 ‘후폭풍’ 때문이었다.

갈등과 대립이 지속되는 한 제주 중앙지하상가도 ‘후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상인들은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며 아우성이라 찬·반으로 부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공명정대했던 판관 포청천과 같은 결단력과 올바른 사리판단을 내렸던 솔로몬왕의 지혜가 필요할 때다.

좌동철. 사회2부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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