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를 만드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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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전 경기도 파주 인근 비무장지대(DMZ)에서 우리 군인들이 수색작전을 나서는 순간 지뢰 폭발사고가 발생 후 1주일 이상 전쟁위기라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을 초래했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8월의 한반도 위기’는 지난 25일 남북이 무박4일의 고위급 접촉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내면서 일단 진정국면에 들어섰다. 남북은 이날 6개 항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기자는 이번 합의문 6개 항 가운데 이산 상봉 문제가 담겨 있다. 이산가족 문제는 정치·군사적 문제와는 별개로 인도적인 문제이다. 특히 당사자들이 워낙 고령임을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역사학자 E.H카는 역사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2000년 한반도는 전 세계의 이목을 받았다. 전쟁 위기 때문에 이목이 집중됐던 올해와는 다른 세계 평화의 중심이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회 위원장이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2박 3일 동안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그 후속조치로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1985년 남북한 고향방문단의 서울과 평양을 교환방문 형식으로 이뤄지기는 했지만 2000년 8월 이산가족 상봉은 또 다른 의미를 가졌다. 기자는 당시 서울주재 기자로 역사의 현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지 6년 동안 팩트를 중요시하고 감정을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는 취재원칙을 배웠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당시 기자는 감정에 휩쓸렸다. 이 포럼을 쓰기 위해 어제 과거 기자가 쓴 2000년 이산가족 상봉 기사를 다시 찾아봤다. 팩트는 단순했다. 이산가족이 만난 것이었다. 하지만 팩트를 넘어서는 것이 있었다. 거기에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가족과 헤어졌던 사람들에 대한 죄송함이었다. 과거에 대한 현재의 미안함이었고 미래에 짊어져할 짐이었다.

남북합의문이 발표된 이후 지난 26일자 본지에도 이산가족 고진섭씨(83)의 사연이 게재됐다. 그 기사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고씨는 “1주일 있으면 다시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이렇게 평생토록 부모·형제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니 너무 기쁠 따름입니다”고 말했다. 고씨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 희망이 고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생각할 때 인간은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자신의 의도대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내 의지대로 모든 일을 이끌어 갈 수는 없다. 그래서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맺게 되고 그 속에서 신뢰를 쌓아가며 이 사회를 유지해 왔다고 본다. 사회계약론을 주장한 동서양의 많은 철학자들의 주장에는 결국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뢰가 깨진 사회는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가 주장한 것처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야만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수 많은 철학자들이 대화와 신뢰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이를 입증해주는 사례는 많지만 가장 최근의 사례가 첫 머리에서 이야기했던 올 8월의 남북한이다. 만약 25일 발표를 이뤄낸 회담이 없었다면, 그 회담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회담과정에서 남북은 솔직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물론 공표할 수 없는 선까지. 그런 솔직함이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피하게 했을 것이다.

제주사회에도 많은 갈등이 있고 그 과정에서 온갖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불확실성만을 키우고 있다. 불확실성이 많은 사회는 필연적으로 붕괴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솔직함을 통해 확신을 주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었다. 당시에는 힘이 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가장 올바른 판단이라고 평가받을 것이다.

부남철. 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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