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합의문이 발표된 이후 지난 26일자 본지에도 이산가족 고진섭씨(83)의 사연이 게재됐다. 그 기사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고씨는 “1주일 있으면 다시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이렇게 평생토록 부모·형제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니 너무 기쁠 따름입니다”고 말했다. 고씨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 희망이 고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생각할 때 인간은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자신의 의도대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내 의지대로 모든 일을 이끌어 갈 수는 없다. 그래서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맺게 되고 그 속에서 신뢰를 쌓아가며 이 사회를 유지해 왔다고 본다. 사회계약론을 주장한 동서양의 많은 철학자들의 주장에는 결국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뢰가 깨진 사회는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가 주장한 것처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야만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수 많은 철학자들이 대화와 신뢰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이를 입증해주는 사례는 많지만 가장 최근의 사례가 첫 머리에서 이야기했던 올 8월의 남북한이다. 만약 25일 발표를 이뤄낸 회담이 없었다면, 그 회담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회담과정에서 남북은 솔직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물론 공표할 수 없는 선까지. 그런 솔직함이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피하게 했을 것이다.
제주사회에도 많은 갈등이 있고 그 과정에서 온갖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불확실성만을 키우고 있다. 불확실성이 많은 사회는 필연적으로 붕괴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솔직함을 통해 확신을 주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었다. 당시에는 힘이 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가장 올바른 판단이라고 평가받을 것이다.
부남철. 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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