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안 난다
개천에서 용 안 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오택진. 논설실장
옛말 그른 게 없다고 하지만, 거기에도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속담들도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져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은 오늘날 남녀평등의 시대에 큰 일날 소리가 아닌가. 어느 대기업에선 직원들을 대상으로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속담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아는 것이 병’이란 속담이 첫 번째로 꼽혔다고 한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지 못하고선 도태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아는 게 병이라니? 오히려 아는 게 약인 시대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미천한 집안이나 변변하지 못한 부모에게서 훌륭한 인물이 나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빈곤해도 자신의 노력과 실력 여하에 따라 사회적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이제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시절은 옛날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이나 신분 상승의 꿈을 이루기가 쉽지 않아서다. 특히 이러한 인식과 경향은 젊은 세대일수록 강하다. 그들은 자신의 노력 보다는 부모의 권력과 경제력에 따라 성공 여부가 좌우된다고 믿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이 아니라, 서울 강남에서 용이 나는 시대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이 전국 20대 이상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계층 상승 사다리에 대한 설문조사’는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사회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응답자의 81%가 열심히 노력해도 계층 상승 가능성이 낮다고 대답했다. 이는 2년 전인 2013년의 75.2%보다 5.8%P 오른 것이고, 특히 20대는 70.5%에서 80.9%로 10.4%P나 크게 늘어났다.

노력해도 계층 상승은 어렵다라는 절망적인 인식이 확산되는 건 이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젊은 계층의 미래가 어둡다는 뜻이고, 그만큼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그래도 개천에서 용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이 속담이 희미한 옛 추억이 되는 건 경제와 관련된 모든 문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 양극화, 고용 절벽이라는 청년실업 문제, 그리고 끝 없이 오르기만 하는 집값과 사교육비 문제 등등. 게다가 고위층 자녀들의 특혜 의혹까지 줄곧 나오는 판이다. 부와 권력이 세습되고,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에서 무슨 희망을 논하겠나. 정부가 희망의 사다리를 놓아주지는 못할망정, 걷어차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