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만장굴과 김녕굴
(33)만장굴과 김녕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웅장한 지하세계가 보여주는 태고의 신비

전설 33-만장굴과 김녕사굴 화산섬인 제주에는 세계적인 규모의 용암동굴이 약 80여 개에 이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위치한 만장굴과 김녕굴이다.

 

▲만장굴 가을의 문턱, 9월. 여름 휴가 성수기가 끝이 났으나 아직도 제주를 찾는 내.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른 아침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만장굴을 찾고 있다. 늦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상황. 만장굴 입구에서 계단 몇 개를 내려가자 동굴 속에서 품어져 나오는 시원한 한기(寒氣)가 온 몸을 감싼다.

 

계단을 다 내려가는 순간 만장굴의 웅장한 규모와 신비스러움을 간직한 만장굴을 방문객들에게 감탄을 자아 내게 한다. 만장굴을 1958년 당시 이 지역 초등학교 교사에 의해 발견돼 세상을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만장굴은 제주도 용암동굴을 대표하는 동굴로, 구좌읍 중산간지역의 검은오름에서 분출한 용암류가 해안까지 흘러가면서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 용암동굴군을 형성하게 됐다.

 

그중 만장굴은 가장 규모가 큰 동굴로 유일하게 일반인들에게 개방돼 태고의 신비를 뽐내고 있다. 총길이 7416m, 최대폭 23m, 최대높이 30m에 이르는 대규모 용암동굴로 약 30만~100만년 전에 형성된 만장굴은 생성연대가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동굴의 형태와 동굴 생성물 등이 잘 보존돼 있어 지질학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만장굴 벽면에는 용암이 흐르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가로 줄무늬인 유선구조가 선명히 남아 있어 얼마나 많은 용암이 흘렀는지를 짐작케 하고 있다. 이밖에도 용암이 굳어져서 만들어진 돌거북, 용암종유, 선반, 석주(石柱) 등 만장굴의 신비로움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또한 60여 종의 동굴 생물이 서식하고 있는데 특히 제3입구 근처 상승부는 긴날개박쥐의 국내 최대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만장굴은 그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이웃한 김녕굴과 함께 1962년 천연기념물 제98호로 지정됐으며 200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2010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지질공원 인증, 2011년에는 세계7대자연경관으로 선정됐다. ▲서련(徐憐) 판관(判官)과 김녕굴 만장굴 바로 인근에는 만장굴의 동생뻘인 김녕굴이 있다.

 

원래 만장굴과 김녕굴은 애초에 모두 연결돼 있었던 것이었으나 동굴 천정이 붕괴되면서 분리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녕굴은 길이 705m로 그리 길지 않지만 독특하게도 3개의 지굴로 이뤄졌으며 동굴 내부는 S자 형태로 이뤄졌다.

 

동굴 입구는 마치 뱀의 머리처럼 크게 벌어진 반면 내부로 들어 갈수록 점점 가늘어져 뱀 모양 같다고 해서 사굴(蛇屈)이라는 별칭이 붙여져 김녕굴을 ‘김녕사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굴 이름에 ‘뱀’이 있듯 이 굴에는 역사적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한 뱀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먼 옛날 김녕굴 안에는 수시로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힘센 장수를 동원해 구렁이를 죽이려고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이에 구렁이는 더욱 화가나 주민들을 못살게 굴었다. 주민들은 이 구렁이를 달래기 위해 매년 처녀 한명을 제물로 바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몇 년, 조선 중종 10년(1510)에 서련이라는 판관이 제주에 부임했다.

 

이 마을의 악습을 알게 된 서 판관은 군사들을 동원하고, 주민들에게 거짓 제사를 지내게 했다. 제사 도중 굴에서 커다란 구렁이가 나와 처녀를 삼키려고 할 때 창과 칼로 뱀의 허리를 자르고 불에 태워 죽여 버렸다. 이 모습을 지켜본 무당은 판관에게 성안으로 돌아갈 때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이에 서 판관은 말을 달려 성문 앞에 도착한 순간 군사 한 명이 “피비(血雨)가 몰려온다”고 소리치는 바람에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순간 말에서 떨어진 서 판관은 며칠을 시름시름 앓다가 1515년 4월 10일 숨을 거두었다.

 

서 판관의 용맹으로 마을의 평안을 되찾은 주민들은 죽은 서 판관의 공덕을 기리는 비를 김녕굴 앞에 세웠다. 지금도 김녕굴 입구에는 오랜 세월이 흘러 이끼가 잔뜩 낀 ‘판관서공련기념비’라는 공덕비가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최근에 세워진 ‘제주판관서련공사적비’라는 비가 있다.

 

서 판관의 시신은 도민들의 눈물 속에 제주를 떠나 고향인 충남 홍성군 구향면 지정리 덕은동 보계산에 안장됐다. 김녕굴에는 절지동물 15종과 척추동물 1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그 중 수리거미는 이곳에서만 사는 것으로 알려지는 있으며 동굴의 학술적 보호를 위해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조문욱 기자 mwcho@jejunews.com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