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구좌읍 하도리 토끼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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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져진 손자를 걱정하는 할머니의 영혼이 문주란꽃으로 변해

제주의 동쪽마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의 굴동포구. 제주의 여느 포구처럼 이 포구 역시 아담한 규모에 아름다운 쪽빛바다에 둘러 쌓여 있다.

 

이 포구에 서면 바로 눈 =앞에 작은 섬이 보이는 데 이 섬이 바로 토끼섬이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이 섬은 ‘바깥쪽에 있는 여’라는 뜻의 난들여로 불리웠는데 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3000여 ㎡의 작은 백사장과 10여 m 높이의 현무암 동산으로 이뤄졌다.

 

작은 배에 몸을 싣고 5분 만에 도착한 토끼섬. 한 여름에 장관을 이루는 문주란꽃을 눈에 담기도 전에 방문자를 반기는 것이 코끝을 기분 좋게 자극하는 진한 문주란꽃향기.

 

배에서 내려 30여 m를 걸어가면 하얀 꽃을 활짝 핀 문주란이 지천이다.

 

문주란은 7월말쯤부터 하얀 눈같은 꽃이 피기 시작해 9월까지 온 섬을 하얗게 물들이며 은은한 향기가 온 섬을 뒤덮는다.

 

온 섬이 문주란꽃이 만발해 먼 곳에서 보면 이 섬이 마치 토끼와 같다고 해서 토끼섬이라고 불리게 됐으며 이 토끼섬과 문주란에는 어린 손자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에 대한 애틋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할머니의 손자 사랑

아득히 먼 옛날, 대 여섯 살 남짓한 어린 아이가 토끼섬쪽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바다로 물질하러 나간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 어린 아이에게는 가족 이라고는 나이든 할머니가 유일했다.

 

할머니는 나이가 들어 물질하기가 힘에 겨웠지만 어린 손자를 키우기 위해서는 힘든 것도 참고 바다로 나가야만 했다.

 

할머니가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고 소라 전복을 캐오는 동안 어린 손자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혼자서 막대기로 모래에 그림을 그리고, 조개를 주우며 할머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물질이 힘에 겨운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으며 손자는 할머니를 빨리 볼 수 있어서 마냥 좋기만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짐작했다.

 

사람은 언제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어린 손자 혼자 이 세상에 남겨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

 

할머니는 손자의 손을 잡고 “내가 없어도 혼자 살 수 있겠니”라고 물으면, 손자는 “할머니와 오래오래 함께 살 건데요, 뭐”라며 아무 걱정 없는 듯 대답했다.

 

“내가 만년이라도 산다 던?” “그럼요, 만년도 더 살거예요”

 

할머니는 점차 몸이 쇠약해저 어느 날 잠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게 됐다.

 

할머니의 혼백은 방문을 나서 토끼섬까지 갔는데 세상에 홀로 남겨진 손자에 대한 애처로움 때문에 차마 더 이상 발길을 옮길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혼백이 집에 남겨진 손자를 먼발치서 바라보면서 망설이던 사이, 발에서는 뿌리가 생기고, 겨드랑이에서는 잎사귀가 돋아났으며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는 비녀를 꽂은 것 같은 모양으로 소박하고 정겨운 미소를 머금은 꽃으로 변했다.

 

그리고 몇 년 후 토끼섬에는 문주란이 만발했는데 만년을 살아야 한다는 손자의 말에 할머니는 꽃이 되어 손자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천연기념물이 된 외래종 문주란

문주란은 우리나라에서 토끼섬이 유일한 자생지이며 일본의 혼슈 남부, 중국 남부, 말레이시사와 인도에 분포한다.

 

문주란 열매 껍질은 해면질로 둘러 싸여 바닷물에 잘 뜬다.

 

이 문주란 열매가 일본의 오키나와나 규수지방에서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이 곳 토끼섬에 유입돼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주는 기후상 문주란 자생지로서의 북방한계 지역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아 1962년 12월 3일 토끼섬 문주란 자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삼복더위와 물 한방을 없는 모래땅이라는 거친 환경을 이겨내 아름다우면서도 순박한 꽃을 피워내는 문주란. 문주란은 관상용 뿐 아니라 아토피염이나 진통, 해독 두통, 관절, 어혈 등에도 효과가 있어 한 때 무분별한 채취로 멸종위기에 처해지기도 했다.

 

1998년 산림청에서 희귀식물 제44호로 지정, 자생지 주변에 돌담을 쌓고 마을주민들 역시 문주란 자생지 보호에 애쓴 결과 현재의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멀리서 손자를 애타게 바라보는 듯 한 할머니의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 같기도 하고, 옥비녀를 꽂고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듯 한 할머니의 모습 같은 문주란. 지금 토끼섬은 문주란이 한창이다.

 

가을의 문턱에서 토끼섬을 보며 할머니의 혼백이 만년을 살아 손자를 지켜보는 문주란을 감상하고 주변에 있는 하도철새도래지와 하도.김녕.세화.월정 백사장을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조문욱 기자 mwcho@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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