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떠나는 길 위에 진달래 꽃잎을
님 떠나는 길 위에 진달래 꽃잎을
  • 조문욱 기자
  • 승인 201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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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아이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걸 잘 압니다? 저희 아이를 생각해서 피고인을 엄하게 처벌해 달라는 게 아닙니다. 제가 가장 무서운 것은 우리 딸과 같은 피해자가 마지막이 아닐 거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딸이 이런 사건의 마지막 피해자가 됐으면 합니다”

지난 3일 헤어지자는 말에 화가 나 동거녀를 살해한 뒤 야산에 암매장한 A씨(25)의 재판에서 피해자 아버지가 진술한 내용이다.

A씨는 지난 5월 서울 관악구의 한 원룸에서 동거녀를 목 졸라 살해한 후 시신을 충북 제천군 야산으로 옮겨 구덩이를 파고 시멘트를 부어 암매장했다.

“서로 좋아했고 정말로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정말 사랑해서 모든 걸 다 줘서 후회가 없다.”

이 말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사랑의 고백처럼 들리지만 지난 8월 동거녀를 살해해 경기도 시화호에 암매장 했다가 지난 6일 검거된 ‘살인자의 변(辯)’이다.

연인의 이별통보에 남성이 앙심을 품고 여성의 얼굴에 염산을 뿌린 사건 등 죽고 못 살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이 한 순간에 살인자로 돌변하고, 폭행을 휘두르는 이른바 ‘이별 폭력’, ‘이별 범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고 있다.

제주지역에서도 지난 1월 동거녀를 목 졸라 살해, 애조로 인근 다리 밑에 버린 후 유족들과 함께 생활했던 남성이 검거되고, 여성의 집을 찾아 폭행, 협박을 하는 등의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용기 국회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연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살인사건은 지난 3년간 313건이며 올해 7월까지 64건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전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은 2012년 984건, 2013년 914건, 2014년 906건으로 해마다 감소하는 반면 연인 간 살인사건은 2012년 99건에서 2013년 106건, 2014년 108건으로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해마다 100건 이상, 매주 2명이 ‘사랑하는’ 애인에게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발생하고 있다.

살인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폭행, 스토킹 등으로 입건된 사례도 연간 7000건이 넘고 있는데 신고 되지 않은 사례 등을 감안하면 그 수는 엄청날 것임이 자명하다.

이처럼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 폭력 등 범죄 발생이 많은 원인은 상대방을 사랑했기보다는 상대를 자신의 일부인 것으로 보고,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소유물로 여기는 집착 때문이라고들 전문가들은 꼽고 있다.

상대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의사를 존중하기 보다는 자신의 소유물, 내가 이룬 성과물이기 때문에 이별을 통보받았을 때 ‘나의 것’을 잃어버렸다는 생각해 배신감을 느끼면서 폭력이나 급기야 살인이라는 극단적이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한 경찰관서 블로그에 ‘이별범죄 예방법’ 이라는 다섯 가지 방법이 제시됐는데 헌신적인 사랑 요구는 위험, 집착하는 애인은 조심하라, 때리는 습관은 못 고친다, 헤어질 때는 잘 헤어져라, 스토킹은 증거를 수집해라 등이다.

사랑을 빙자한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면죄부를 받을 수 없는 범죄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있다. 만남은 그 자체가 이별인 것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 오리다’

시인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다.

사랑의 깊이만큼 아픔도 크지만 떠나는 여인의 행복을 빌며 ‘소금’이 아닌 꽃잎을 뿌려주는 성숙한 이별이 필요하다.

조문욱. 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