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제주 출신 첫 순교자 발자취 남아
(36) 제주 출신 첫 순교자 발자취 남아
  • 좌동철 기자
  • 승인 2015.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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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천주교 성지순례길-김기량길
   
▲ 제주시 조천읍 함덕중학교 인근에 2005년 건립된 김기량 순교 현양비.
지난해 6월 개장한 ‘김기량길’(9.3㎞)은 제주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시발점이자 제주시 조천읍 지역의 역사·문화·경관 자원을 살펴 볼 수 있는 순례길이다.

제주 출신 첫 천주교 신자인 김기량(1816~1867)은 조천읍 함덕리 출신으로 일찍이 배를 타고 장사를 했다.

1857년 그는 동료 4명과 함께 약재와 그릇을 배에 싣고 모슬포로 항해하던 중 사나운 폭풍을 만나 동료들을 모두 잃었다. 김기량은 한 달 이상 홀로 표류하다가 중국 광저우 해역에서 영국 상선에 구조됐다.

김기량은 홍콩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로 보내졌고, 통역을 맡은 조선인 신학생 이 바울리노를 만난 후 천주교리를 배웠다.

이곳에서 루세이유 신부에게 ‘펠릭스 베드로’란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아 제주 출신 첫 신자가 됐다.

1858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가족과 선원 등 40여 명에게 선교활동을 벌였다. 그는 1899년 제주에 천주교 사제가 파견, 교회 형성과 전례행위가 시작된 것보다 41년이나 앞서 복음을 전파했다.

1866년 병인박해가 한창일 무렵 김기량은 세례를 받을 예비신자들을 데리고 경남 통영으로 갔다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체포됐다.

통영 관아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고도 굳게 신앙을 지킨 그는 교수형에 처해졌다. 당시 나이 51세였다. 관헌들은 그가 살아날까 두려워 가슴에 대못을 박기도 했다.

순례길은 조천성당에서 출발한다. 길은 조선시대 제주와 육지를 연결했던 관문인 조천포구로 이어진다.

제주로 부임하고 이임하는 관리들과 조공선이 수시로 드나들던 조천포구에는 방어시설인 조천진성이 들어서 있다.

성 위에는 ‘연북정(戀北亭)’(도유형문화재 3호)이 있다. 이곳은 제주에 파견된 관리나 유배인들이 고향과 임금이 있는 북녘 한양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달래던 정자로, 원래는 사신이나 벼슬아치들이 묵었던 객관(客館)으로 건립됐다.

해안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보면 신흥리 해안가 끝에 ‘관곶’이라 세워진 안내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제주에서는 관곶이 전남 해남 땅끝마을과 가장 가까운 곳(83㎞)으로, ‘관포’(조천포구)로 가는 길목에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순례길은 함덕 서우봉해변으로 이어진다. 이곳에는 김기량 생가 터가 있는데 현재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서 있다.

함덕중학교 인근에는 2005년 김기량 순교 현양비가 세워졌다. 현양비의 앞은 배 모양을 하고 있으며 비문 위에는 닻과 닻줄이 조각돼 있다.

지난해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등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를 복자로 선포하는 시복식(諡福式)을 거행했다.

김기량은 제주의 첫 순교자이자 복자(福者)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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