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기소장 (禍起蕭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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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시대의 노(魯)나라는 계씨(季氏)가 여러 대에 걸쳐 권력을 좌우했다. 그중 계강자(季康子)의 세력은 왕을 능가할 정도였다. 그는 계씨 가문의 봉지(封地)인 비읍 근처의 소국 ‘전유’를 쳐서 빼앗으려 했다. 전유는 노나라의 속국이었으나 국력이 자못 튼튼했다. 계강자는 전유가 후손들의 근심이 될 것을 우려해 미리 후환을 없애려 한 것이다.

그 무렵 공자의 제자인 염구와 자로는 계강자의 가신으로 있었다. 공자는 제자들이 계강자의 침략 행위를 막지 못하는 것을 꾸짖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보기에 계씨의 근심은 전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담장 안에 있는 것 같다(吾恐季孫之憂 不在?臾, 而在蕭牆之內也ㆍ오공계손지우 부재전유, 이재소장지내야).”

논어의 ‘계씨’편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여기서 비롯된 고사성어가 ‘화기소장(禍起蕭墻)’이다. 소장은 임금과 신하가 만나는 곳에 세웠던 병풍을 일컫는다. 달리 집안의 담장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따라서 “재앙이 담장 안에서 일어난다”는 게 원뜻이다. 문제의 발단이 내부에 있을 때, 즉 내부에서 생기는 갈등이나 내분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화기소장이 사용된 예론 당(唐)나라 때 호증(胡曾)이 지은 시 ‘장성(長城)’을 꼽을 수 있다. “재앙이 담장 안에서 일어나는 줄도 모르고, 오랑캐를 막는다고 헛되이 만리장성을 쌓았네(不知禍起蕭墻內, 虛築防胡萬里城ㆍ부지화기소장내, 허축방호만리성)“란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화기소장의 사례는 오늘날에도 이어진다. 현재의 우리 정치권 상황이 딱 그렇다. 내년 총선 공천 주도권을 놓고 여야 내부의 계파 갈등이 격해지고 있는 것이다. 비록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문제로 겉으론 소강 국면에 접어든 모양새지만 물밑 싸움은 오히려 더 치열하다. 그러니 역사교과서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매듭 짓게 되면 당 내분이 재점화될 게 불 보듯 뻔하다.

이런 화기소장은 요즘 제주도의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의장의 독단·독선적 의회 운영을 둘러싼 갈등으로 의회가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진 것이다. 의회운영위원회의 문제 제기에 대해 의장이 격한 대응을 하고, 다시 운영위 차원의 유감이 표명되면서 내분이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치닫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참으로 한심스럽고 볼썽사나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됐을까. 유사 성어는 서로 자기만 살겠다고 형제나 한 집안끼리 싸우다가 결국 모두 망하는 자피생충(自皮生蟲)이다. 그 성어들의 의미를 잘 새겨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경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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