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삼신인이 솟아났다는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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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국 발상지 삼성혈

과거 먼 옛날 드넓은 망망대해만 있을 뿐, 제주 땅이 없던 시절 현재의 제주 땅덩어리를 만든 이는 신화 속 설문대할망이다.

 

옥황상제의 딸인 설문대할망은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치마폭에다 흙을 날라다 바다 한 가운데 제주 땅을 만들었다.

 

설문대할망이 만든 제주 땅에 인류가 살기 시작하고 문화를 꽃피운 것은 바로 탐라국 발상지인 삼성혈(三姓穴)에서 나온 삼신인(三神人)이다.

 

사적 제134호로 제주시 이도1동, 제주도심속에 자리 잡은 삼성혈(三姓穴)은 말 그대로 세 개의 성을 가진 사람이 솟아난 구멍이라는 뜻이다.

 

제주를 본관으로 하는 고(高)씨, 양(梁)씨, 부(夫)씨의 시조인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신라시대 사성·賜姓·임금이 내린 성·에 의해 梁으로 바뀜), 부을나(夫乙那) 세 신인이 솟아난 곳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모흥혈(毛興穴)이라고도 불린다.

 

▲잘 짜여 진 신화

삼성혈에서 나온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세 신인은 제주 곳곳을 누미며 수렵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라산에 올라 사냥을 하다가 멀리 바라보니 동쪽 바다위에서 오색찬란한 나무상자가 떠 내려와 해안에 머무는 것이 보였다.

 

삼신인은 그 곳을 찾아가 목함(木函)을 열었다.

 

그 안에는 벽랑국(碧浪國)에서 온 푸른 옷을 입은 15세 안팎 가량의 공주 세 명과 송아지, 망아지, 그리고 오곡(五穀)의 씨앗이 있었다.

 

삼신인은 나이순에 따라 세 공주를 각각 배필로 정하고, 이들을 맞아 연못에서 혼례를 올렸는데, 이들이 혼례를 올린 곳이 바로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의 혼인지(婚姻池)이다.

 

이렇게 세 공주와 혼인 한 삼신인은 각자의 생활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활을 쏘아 살 곳을 정했다.

 

그들이 제주를 제일도(第一都), 제이도(第二都), 제삼도(第三都)로 분할했는데 지금의 제주시 일도동, 이도동, 삼도동의 효시가 됐다.

 

이렇게 혼인을 한 후 각자 삶의 터전까지 갖춘 삼신인은 벽랑국 공주들이 가지고온 곡식과 송아지 망아지로 농경생활과 목축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삼신인이 각자의 도읍을 정하기 위해 화살을 쏜 곳이 바로 5·16도로 마방목지 남서쪽에 있는 사시장올악(射矢長兀岳)이라는 오름이다.

 

물장오리와 태역장오리와 함께 자리하고 있는 이 오름은 그 이름처럼 ‘화살을 쏜 곳’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또한 이들이 쏜 화살이 박힌 돌이 바로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삼사석(三射石)으로 현재 삼사석은 지방기념물 제4호로 지정돼 있으며 석실(石室)에 잘 보존돼 있다.

 

조선 영조 11년(1735) 제주목사 김정은 이 삼성신화를 듣고 삼사석비(三射石碑)를 세운 후 ‘삼성혈 화살 쏜 돌 남아 있으니 신인들의 기이한 자취, 천추토록 서로 비추리라’라는 뜻의 한문으로 비문을 새겨 넣었다.

 

이렇듯 삼성혈을 비롯 혼인지, 사시장올악, 삼사석 등 삼성혈과 관련된 전설들은 앞뒤가 잘 맞는 퍼즐 같기도 하고, 구성이 탄탄한 드라마 각본 같기도 하다.

 

특히 삼신인이 각자의 삶의 터전을 나눈 일도, 이도, 삼도는 현재의 주소는 물론 행정기구의 틀로 자리 잡아 마치 전설에 현실성마저 가미돼 단순히 전설이 아닌 역사적 사실과 같은 느낌을 전하고 있다.

 

▲제주의 심장 삼성혈

면적 3만4000여 ㎡의 삼성혈은 타 도시처럼 도심 속 녹색 공원이 없는 제주에서 도심 허파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도심 속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는 삼성혈에는 녹나무, 곰솔, 팽나무, 담팔수, 구실잣밤나무 등 50여 종 10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이들 나무들은 수령이 500년 안팎으로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삼성혈 전체를 뒤 덮으며 햇볕이 내리 쬘 공간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혈에서는 한 여름에도 하루 종일 그늘이 드리워져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삼성혈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까지는 조선 중중 때부터이다.

 

중종 21년(1526)목사 이수동이 삼성혈 주변에 담장을 쌓고 홍문(紅門)을 세워 춘추봉제(春秋奉祭)하기 시작한 이래 역대 제주에 부임한 목사들에 의해 성역화사업이 진행됐다.

 

현재도 삼성혈에서 매년 4월 10일에는 춘제, 10월 10일에는 추제를 지내고 있으며 12월 10일에는 건시대제가 치러진다. 조문욱 기자 mwcho@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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