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먹을 때, 은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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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혜 부모교육 전문 강사>

초등학교 때부터 만나오던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입학 축하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를 주문해주었다. 배달되어온 피자를 나누어 먹으려니 음료수 컵이나 접시 등이 필요해서 주방까지 몇 번을 왔다갔다 해야했다.


그런데 한 번 갔다 올 때마다 뭔가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는 했다. 준비가 다 되어 자리에 앉아 아이들이 먹고 있는 모습을 보는데, 누군가 한 명에게로 시선이 모아지면서 “그래, 많이 먹어라, 아니 다 먹어라.” 하고 한 명 아이가 다른 아이를 지목하며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킥킥거리며 “더 먹어, 나 하나만 먹을 테니까 내 것도 니가 먹어.” 라고 한다. 그러면 또 다른 아이가 한 마디 하고...


분위기를 보니, 한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이 피자를 먹으라고 반강요를 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평소에 음식 욕심이 좀 있는 아이인데 이번에 피자가 배달되어오자 조금 서둘러 먹으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처음엔 농담으로 한 명이 놀리는 것처럼 시작되어 한 두 번 더해지면서 마침내 놀림거리처럼 되어버린 분위기이다. 먹으려고 했던 아이는 우물쭈물 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 매고 있고, 다른 아이들은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나는 입을 다물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이었다) 


한 동안 아무 말도 안하고 아이들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았더니 나의 무거운 기분을 알았는지 아무 말도 안하고 피자를 먹는다.


 축하해주려고 사준 피자의 의미는 상실되고 벌 받는 기분으로 먹는 분위기다. 이럴 때, 내가 나서서 분위기를 풀어야 하는데 뭐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하다. 그런데 그때까지 친구들과는 달리 한 마디 안하고 의연하게 있었던 아이가 한 명 있었다. 그 아이에게 시선을 돌려 “00야, 이번에 배치고사는 어떻게 봤어?” 지금 분위기와는 전혀 뜬금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다음  “00는 아까 아무 말 없이 반듯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참 멋있더라. 의젓한 중학생다웠어.” 하고 친구들이 하는 행동을 함께 하지 않은 모습을 인정해줬다.


그랬더니 “선생님,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그럴게요.” 앞장서서 놀렸던 아이가 먼저 사과를 하자 다른 아이들도 다들 한마디씩 죄송하다고 한다.


“그래, 먼저 이야기해줘서 고맙구나. 너희들이 그냥 장난으로 한 마디씩 하다보니  이렇게 된 거지. 그런데도 잘 견뎌준 00도 훌륭하다. 누가 놀려도 이렇게 의연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심력이 있는 거거든.” 했더니 그 아이도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아무도 잘못은 없다. 처음부터 누가 누구를 어떻게 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먼저 읽어주고 기다리면 아이들은 스스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그 때 무엇보다도 상처받을 수 있는 아이를 먼저 떠올려 다독이면 된다.


긴장된 가운데에서도 새로운 한 가지를 배우게 된, 분위기가 풀리며 떠들썩한 입학 축하 파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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