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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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 명문대를 졸업했다해서 번듯한 직장을 잡는 시대가 아니다. 암담한 청년 실업난은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라는 서울대에도 그 한파가 몰아닥쳤다. 얼마 전, 한 서울대생이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는 소식이 화제를 모았다. 해당 글이 올라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천 건의 댓글이 와르르 달렸다.

거기에는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찾는 시대상을 반영했다는 글이 많았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주변의 기대를 저버리는 선택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말하자면 “9급 공무원 할 거면 왜 서울대에 갔느냐”는 거다.

▲9급 공무원의 지위를 폄하할 수 없지만,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에서 서울대생의 9급 공무원은 반향을 일으킬 만하다. 예전 경향으로 보건대 서울대생은 사법ㆍ행정 등 각종 고시에 뜻을 두었다. 그것도 아니고, 더구나 7급도 아닌 공무원 최하위 직급을 택한 건 아무래도 뜻밖이다. 그렇다 해서 누구나 선망하는 대기업이나 공기업 취업에 번번이 실패해서도 아니다. 처음부터 9급 공무원에 뜻을 두고 준비한 것이다.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것은 바로 ‘저녁이 있는 삶’을 찾기 위함이다. 월급 150만원으로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까마득하지만, 자신에게는 그게 더 중요한 가치라는 것이다.

▲그의 바람대로 공직이 그걸 보장해줄지는 의문이다. 공무원에게도 나름대로의 업무 고충이 적지 않고, 때론 ‘저녁 없는 삶’, 경우에 따라서는 ‘주말 없는 삶’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실적과 업무 경쟁에 치이고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사기업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공무원 시험 응시자가 인산인해를 이루는 건 그와 무관치 않다. 직급이나 당장의 급여가 문제가 아니다. 그 보다는 안온한 생활과 가족과 같이 하는 삶의 의미 같은 게 더욱 중시된다는 얘기다.

▲‘저녁이 있는 삶’은 정계은퇴 선언 후 칩거 중인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대선 슬로건이기도 했다. 이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너나 없이 뭔가에 쫓기면서 악착 같이 달리며 살아가고 있음을 방증한다.

오로지 일 때문만도 아니다. 이런 저런 모임에 찾아 다녀야 하고, 만나야 할 사람도 너무 많다. 인맥이 사회 생활에 있어 중요한 요인이다 보니 낮보다는 저녁이 더 바쁠 건 당연지사. 그 속에서 가족과의 시간이니, 행복이니 하는 소리가 한가할 뿐이다.

어쨌든 서울대 9급 공무원 사례는 우리 사회에 새삼스럽지만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저녁이 있는 삶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오택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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