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고난의 선교활동.역사의 발자취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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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기독교 성지순례길-순종의 길(1코스)
▲ 현재 금성교회 모습.

제주는 1908년 이기풍 목사가 선교사로 파견되면서 공식적으로 기독교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제주 기독교는 100년의 넘는 선교 활동 동안 고난과 순교를 겪는 등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본지는 제주관광공사와 제주CBS가 조성한 순례길을 4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제주 기독교 성지순례길 1코스는 ‘순종의 길’로 2012년 개통됐다.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에서 한림읍 협재리까지 14.2㎞로 걸어서 5시간이 걸린다. 순종의 길은 제주 기독교사에서 역사적인 유적과 성지들을 잇고 있다.

길은 금성교회에서 출발한다. 조봉호 애국지사(1844~1920) 등 8명이 1907년 금성리 양석봉의 집을 기도처로 삼아 예배를 올린 것이 금성교회의 시초다.

제주 독립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조 지사는 1902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설립한 서울 경신학교에 입학, 기독교에 귀의해 전도사로 활동했다.

그는 군자금 1만원을 모금, 상하이 임시정부에 보냈다가 징역을 살았고, 1920년 37세 나이로 옥사했다.

예배를 위해 집을 제공한 양석봉 역시 모금 운동에 동참하는 등 금성교회는 복음과 함께 독립운동의 씨앗을 뿌렸다.

이 교회의 초대 성도인 이도종 목사(1891~1948)는 제주 출신 첫 목사이자 1호 순교자가 됐다.

그의 부친 이덕련 장로는 당시 경민장(이장)으로 활동했고, 곽지와 금성마을 어장분쟁을 해결한 후 주민들을 위해 바닷가에 우물 모양의 용천수 ‘남당물’을 설치했다.

남물당은 예나 지금이나 여름철 물맞이 장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보라색 리본과 물고기 모양의 순례길 안내 표지를 따라 가다보면 귀덕리 궤물동산, 수원리 평수포구, 한림 해안길, 비양도 선착장 등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해안 명소를 감상할 수 있다.

여정의 끝자락에 있는 한림교회는 1915년 설립됐고, 올해 ‘창립 100주년 역사 전시회’를 열고 있다. 교회는 고난과 희생을 짊어졌던 제주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1942년 한림교회에 부임한 서귀포시 중문 출신 강문호 목사(1898~1986)는 주일예배에서 찬송을 부른 뒤 침묵으로 말씀을 전하고 신자들도 침묵으로 받아들이는 ‘침묵 설교’를 한 일화가 유명하다.

일제가 기도와 설교를 일본말로 하라는 지시를 강 목사는 거부해 ‘침묵 설교’로 맞섰다. 이후 일본 경찰은 더 이상 예배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교회당은 일본군 막사로 사용돼 군인들이 드나들면서 비운을 겪어야 했다.

일제시대 한림항은 일본 해군 함정이 배치됐고, 군수물자를 생산하던 기지였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인 1945년 7월 6일 미군은 한림항을 폭격했고 탄약저장소가 폭발, 민가 40채가 파괴되면서 주민 수 십 명이 사망했다.

한림교회도 폭격을 맞아 교회당과 사택, 종각이 무너져 내렸다. 강 목사는 부상을 당했고, 사택 부엌에 있던 그의 누이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강 목사의 모친은 이 충격으로 폭격이 있은 지 9일 만에 별세했다.

미군정청은 폭격 피해를 입은 한림교회를 위해 1946년 일본 신사(神社) 터를 예배당 터로 내줬다. 한림교회는 1947년 1087㎡ 부지에 다시 교회를 지었고, 현재 예배당은 1987년 신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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