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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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이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로 부른다. 그들은 달력을 만들 때 풍경의 변화나 삶의 성찰을 주제로 해서 그 달의 명칭을 정한다.

이를 테면 1월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달’이라 하고, 2월은 ‘홀로 걷는 달’, 3월은 ‘마음을 기쁘게 하는 달’로 명명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인디언들은 왜 이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이 아닌 달’로 정했을까. 아직 다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노력해서 더 많은 걸 소유하라는 뜻일까.

아니다. 오히려 지난 계절의 생산과 소유로부터 벗어나 이제 11월의 대지처럼 ‘비움’을 예비하라는 가르침이다.

▲그들의 인식에서 그렇듯 11월은 만물이 소멸해가는 조락(凋落)의 계절이다. 나무들은 그 간의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울긋불긋 어린 아이 색동옷으로 갈아 입었다. 이제 곧 땅으로 되돌아갈 운명 앞에서 마지막을 곱게 채색한 단풍이 가없이 아름답다. 만약, 나뭇잎들이 땅에 떨어져 썩는 것을 거부한다면 저리 곱게 물들일 수 있을까.

늘 푸르름만 뽐낼 수 없는 게 대자연의 이치다.

낙엽을 다 떨군 나목(裸木)의 모습에서 우리는 ‘텅 빈 충만’을 이야기 한다.

이 계절엔 그게 자연스럽다.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는 왠지 어색하게 다가온다.

▲인간사회가 시끄러운 건 이 ‘비움의 교훈’을 온몸으로 거부해서다.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은 이번이 마지막이라 해놓고선 선거철이 되면 다시 한 번 ‘기회’ 운운한다.

그것도 당적까지 바꿔가면서. 유권자들과의 약속은 헌신짝 내팽겨치듯 버리고, 식은 죽 먹듯이 변절을 시도한다. 정치 불신을 넘어 혐오를 조장하는 몰염치의 극치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작금의 우리 신문도 ‘비울 줄 모르는’ 전(前) 사주 일가의 빗나간 집착 때문에 혼란스럽다. 신문 경영을 파탄내고, 직원들의 생계를 내팽개친 데 대해 일말의 책임도 못 느끼는 그 무감각이 놀라울 뿐이다.

▲누군들 욕심과 집착이 없겠나.

일생을 오로지 그 하나만을 위해 다 걸고 쌓아올린 명예나 위치를 허망히 내려놓기란 쉽지 않을 거다. 누구라도 그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을 버린다는 게 사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비우면서 다시 채워지는 거다. 모두 다 사라진 것 같지만, 사라진 게 아니라는 인디언들의 성찰은 그래서 이 계절의 교훈을 대변하지 않나.

비우지 못하고 오로지 그 여름의 녹음에 매달려 있으니 어쩌랴. 그런 집착을 보고 있으려니 추워지는 날씨에 마음마저 씁쓸하다.

오택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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