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의 전당은 전쟁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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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정치부장
제주특별자치도의회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설계하는 올해 마지막 정례회 시즌에 돌입했다.

이를 지켜보는 많은 도민들은 풀뿌리 지방자치의 두 수레바퀴로 집행기관인 도정과 의결기관인 도의회가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의 길로 접어들기기를 희망하고 있다.

1년 전 새해 예산안 심사 시 두 기관의 수장인 원희룡 지사와 구성지 도의회의장이 서로 감정을 자극시키며 충돌했고, 진흙탕 싸움 끝에 불러온 ‘예산안 부결’ 사태가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당시 사상 최대 규모인 1682억원이 삭감되고, 사실상 쓸수 없는 내부 유보금으로 조정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올해에도 지난 7월 진행된 추경예산안 심사에서 도의회가 112억원을 삭감해 이를 다른 사업으로 증액하는 수정안을 냈지만 집행부는 증액 사업을 전면 부동의, 이 돈은 묶였다.

문제는 그 피해를 지방자치의 주인인 도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제주도정을 책임지는 민선 6기 집행부나 10대 도의회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여태껏 내놓지 못하고 있다.

막연히 지난 1년간의 ‘학습 효과’에 희망 섞인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다.

그동안 도의원들은 자신들의 공약 이행과 유권자들의 ‘손톱 밑 가시’ 같은 민원 해결을 위해서는 증액이 불가피, 집행부가 이를 동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반면 집행부는 지방자치법에서 부여된 권한에 따라 신규 비목 설치와 증액 사업 중 선심성 소지가 있거나 사업 타당성이 없는 예산은 동의할 수 없다는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다.

이처럼 양 측이 이번에도 팽팽한 줄다리기를 한다면 도의회는 대규모의 보복성 삭감을, 집행부는 증액 사업 부동의 수순을 밟게 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구 의장은 지난 16일 정례회 개회사를 통해 “새해 예산안 심의를 앞둔 저와 동료의원들의 마음은 비움을 당했다”며 “집행부 예산 손질이 불가피한 상황은 분명해 보인다”고 심경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4조원이 넘는 내년도 예산안 심사도 기대만큼 순항할지 여부가 불투명해진다.

이 때문에 도민의 뜻을 대변하는 민의의 전당을 전쟁터로 만들지 않으려는 양 측의 자세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제주도와 도의회가 어느 한쪽을 쓰러뜨려야만 할 적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면, 공멸하지 않기 위해 긴장감 속에 견제를 하면서도 동반자 관계를 회복하려 노력해야 한다.

제주일보가 지난 2월 설을 앞두고 43개 읍·면·동 주민자치위원 17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예산 갈등 인식 조사 결과를 다시 한 번 되새겼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책임 소재에 대해 ‘양쪽의 책임이 똑같다’는 응답(32.6%)이 가장 많았다.

예산 갈등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서도 ‘제주도의 협상력과 소통 부재(34.9%)’, ‘도의회의 과도한 재량사업비(지역 민원예산 포함) 요구(33.1%)’ 순으로 조사됐다.

이제 성숙한 지방자치의 실현을 위해 정치인들의 필수 덕목인 대화와 타협을 생각해볼 때이다.

올해 제4회 대한민국 지방자치발전대상에서 지역발전 부문 ‘최고 대상’을 수상한 제주도의 수장 원 지사나 제9회 대한민국 의정대상에서 ‘최고 의장상’을 받은 구 의장을 비롯한 도의원 모두에 한번쯤은 믿어봐도 되지 않을까.

공자는 논어의 자로 편에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과 생각을 같이하지는 않지만 이들과 화목할 수 있는 군자의 세계, 밖으로는 같은 생각을 가진 것처럼 보이나 실은 화목하지 못하는 소인의 세계를 대비시켰다.

다음 달 1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정례회에서 누가 군자이고, 누가 소인배인지 도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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