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선산을 지켜온 소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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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귀가 나를 가르쳤다.” 경청을 이야기할 때 즐겨 인용하는 것으로, 세계를 정복해 몽골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이 한 말이다.

 

그는 배운 게 없어 자신의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는 항상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늘 열린 귀에 열린 마음을 갖고 있기에 정보전에서부터 항상 상대방보다 한 수 앞섰다. 난공불락 같았던 적들의 성을 공격할 때는 포로들이 전해준 정보가 요긴했다.

 

정복하지 못한 미지의 땅 사정은 실크로드를 오가는 상인들이 자세히 전해줬다. 귀가 열려있다고 해 모든 말이 들리는 것은 아니다. 칵테일 파티 효과란 말이 있다. 왁자지껄한 잔치마당에서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관심을 두는 이야기만을 골라 듣는 것을 말한다. 이런 성향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강하다.

 

▲내 고향은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다. 제2공항 건설 추진으로 유명세를 타는 마을이다.

 

선산이 있고 어머니와 두 분 형님이 있다. 예전까지만 해도 누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덥석 신산리라고 하면 모를까 봐 그 앞에 꼭 성산읍을 내세웠다. 그래도 상대방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면 성산일출봉을 마치 ‘신의 한수’처럼 갖다 댔다. 아마 인근인 난산리나 온평리 출신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필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만큼 제2공항 파급 효과가 크다. 이런 와중에 고향 사람들이 공항 건설과 관련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자 ‘선산을 지키는 굽은 소나무’가 떠올랐다. 공항 반대에 대한 자신들의 진정한 ‘울림’을 전달하기 위해 외부 어느 단체와도 연대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 때문이다.

 

목소리를 내는 방식이 서툴고 답답해도 자신들끼리 하겠다는 것이다. 모진 풍파에 말라 비틀어지고 굽어도 꿋꿋하게 선산을 지켜온 소나무처럼 말이다.

 

▲제주도정은 제2공항 건설과 관련해 칵테일 파티만을 염두에 두어서는 곤란하다.

 

토지 수용과 소음으로 해당 지역 주민들의 근심은 이만저만 아닌데도 ‘대박이다’‘제주 역사상 최대 프로젝트다’라는 말만 크게 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온평리 주민들이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울분을 토했다. 마을 토지의 절반이나 다름없는 45%가 공항 건설에 수용되면서 마을은 두 동강 나고 혼인지 마을 온평리라는 이름은 대한민국에서 지워질 것이라고 했다.

 

사정이 이러한 데 인터넷상에는 ‘보상 때문이다’라는 등의 폄하 발언도 떠돌아다니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도정은 물론 도민사회도 이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은 고향을 지킨 죄밖에 없다.

 

고동수 서귀포지사장 esook@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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