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지 마을과 제2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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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철. 사회부장 대우
신탐라순력도 기획물 연재를 위해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를 찾은 적이 있다. 따뜻하고(溫), 산이 없어서 평평한(平) 온평리는 개국신화를 탄생시킨 혼인지 마을로 널리 알려졌다.

제주의 시조인 고·양·부 삼신인은 사냥을 하던 중 온평리 해안에서 나무상자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벽랑국 세 공주와 송아지, 망아지, 오곡씨앗이 있었다. 삼신인과 세 공주가 혼례에 앞서 목욕재계한 연못이 혼인지(婚姻池)다. 수렵생활을 하던 지배 세력(삼신인)이 농경 세력(세 공주)을 만나 국가 체계를 갖췄다는 탐라국 신화를 볼 때 제주의 자손들이 번창하게 된 기원은 바로 ‘혼인지’다.

개국신화의 상징이자 관광 명소인 혼인지에는 그 흔한 토산품점이 한 곳도 없을 정도로 온평리는 개발에서 빗겨간 조용한 마을로 기억이 남는다.

그런 온평리가 제주 역사상 최대의 국가 프로젝트인 제2공항 건설을 놓고 벌집을 쑤신 듯 하다.

제2공항 반대 온평리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공항 예정지의 76%가 온평리이고, 마을 토지의 45%가 수용되는 제2공항 건설로 혼인지 마을 온평리가 대한민국에서 지워져 버리게 됐다. 제2공항을 수용하면 개국신화의 한축을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성토했다.

이날 국토교통부는 제2공항 건설비 4조1000억원 중 5000억원(12%)을 보상비로 잠정 책정했다고 발표했다.

또 다른 보상책은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제시한 에어시티(Air City·공항복합도시)다.

에어시티는 공항이라는 운송 기능에 더 나아가 공항을 중심으로 상업·관광·문화·쇼핑·오락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하나의 종합도시를 말한다. 싱가포르 창이, 네덜란드 스키폴, 핀란드 반타 국제공항 등이 에어시티를 조성했다.

싱가포르의 에어시티는 저렴한 비용의 호텔과 수영장, 사우나, 헬스클럽, 어린이 놀이방, 골프연습장 등을 갖췄다. 면세점에서 파는 물건은 싱가포르 어느 곳보다 싸도록 제도화됐다.

창이공항 실내 공원에는 50만 여종의 식물과 500여 종의 다채로운 꽃들을 감상할 수 있고, 면세점에서 10달러 이상 사용한 영수증만 제시하면 세계 최고의 길이를 자랑하는 미끄럼틀을 이용할 수 있다.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은 “세계 최고 공항들, 이런 곳이라면 비행기가 연착해도 언제든 환영한다”며 창이공항 등 세계 10대 공항을 소개했다.

에어시티와 같은 장밋빛 청사진에 대해 온평리비대위는 반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이들은 “보상비로는 수용된 토지만큼의 농지를 다시 구매할 수 없어서 주민들의 생존권이 박탈된다. 주민의 90%가 노인이어서 에어시티를 조성해도 장사를 하면서 먹고 살 수 없는 처지”라고 호소했다.

제2공항과 관련,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소음이다. 항공법에 따르면 75웨클(WECPNL·항공기 소음도) 이상은 항공 소음피해 지역으로 규정하고 95웨클 이상은 이주 대상지역이다.

소음 문제를 해결하고 24시간 운항 할 수 있도록 일본 간사이와 상해 푸동, 홍콩 첵랍콕, 싱가포르 창이,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 등 세계적인 공항은 바다를 매립한 인공섬이나 주거지와 떨어진 해안에 건설했다.

이제, 제2공항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주민 이주와 소음 피해 대책이 선결 과제로 꼽히게 됐다. 제주의 백년대계인 제2공항은 확정까지 25년을 끌어왔다. 제주도민의 숙원사업이라고 하지만 혼인지 마을은 반발이 거세다.

제주인의 뿌리를 확인시킨 개국신화를 만들어 낸 혼인지 마을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공정한 보상, 진정성이 담긴 이주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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