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조르게
리하르트 조르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여러 해 전에 러시아의 블라디카프카스라는 도시에 있는 러시아 친구의 집에서 그 가족과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 러시아의 국경일인지 국가적 행사를 하는 듯했다. 2차대전 승전(勝戰) 기념일이라 했다.

러시아어에 익숙치 못한 나로서는 가끔 아는 단어가 들려오면 분위기를 짐작할 정도였다. 푸틴 대통령이 연설을 했고, 국민가수에 해당하는 여가수가 나와서 모든 사람들이 따라 부르는 러시아 노래를 불렀다. 방송이 이어지던 중에 중년 남자의 얼굴이 TV 화면에 클로즈업되었다. 그의 업적을 소개하는 화면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함께 TV를 보던 그들의 얼굴 표정을 보면 화면에 나온 그 사람은 대단한 인물인 듯한데, 나로서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러시아의 얼굴들 중에는 본적 없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러시아 친구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누구냐? 무슨 일을 한 사람이냐?” 그러자 러시아 친구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아니 저 사람도 모르는가?” 하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리하르트 조르게라고 했다. 리하르트 조르게가 누구냐고 다시 물었더니, 저 사람은 소련이 2차대전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세계 최고의 스파이라고 했다.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서 조금 더 설명을 듣고 싶었다.

리하르트 조르게(Richard Sorge:1895-1944)는 말 그대로 세계 최고의 첩보원이었다. 그는 독일 아버지와 러시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독일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조르게는 마르크스의 동지로 활동했던 공산주의자였고, 리하르트 조르게 역시 공산주의자였다. 1차대전에 참전하여 큰 부상을 입었고, 이후에 소련으로 건너가서 국제공산당(코민테른)의 요원이 된다. 그런저런 과정을 거쳐 독일 어느 신문의 특파원이 되어 일본 동경으로 가서 활약하게 된다. 일본의 여성 언론인과 결혼을 했고, 일본 정계의 핵심 인사들과 교류하게 된다. 소련의 첩보원으로서 일본으로 간 것인데, 첩보활동 중에 그는 2차대전을 끝낼 만한 결정적인 첩보를 러시아로 보내게 된다.

일본이, 태평양 쪽에서 소련과 싸우기보다 동남아로 진격하려 한다는 첩보였다. 그러니까 한동안 소련은 일본과의 전쟁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첩보였다. 그 첩보에 근거하여 소련은 태평양 쪽에 있던 수십만의 군대를 돌아오게 해서 독일군과 싸워 독일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다. 독일의 그 패배가 2차대전을 끝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지금도 리하르트 조르게를 최고의 전쟁 영웅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2차대전이 끝나기 조금 전에 그는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일본이 소련에게 스파이 교환을 제안했을 때, 소련은 그를 모른다고 외면해 버리고 말았다. 당시에 리하르트 조르게를 기소했던 일본인 검사는 리하르트 조르게에 대하여 “내 평생 그보다 위대한 인간은 만나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신학교에서 기독교 역사를 가르쳐온 나는 그 때 리하르트 조르게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고, 관심의 폭을 좀 넓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요즘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예민해진 이 나라 역사학계는 국민들의 역사의식을 조금 더 넓고 깊게 만드는 일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기를 부탁하는 바이다. 서로를 받아들이려는 의지를 거의 보이지 않는 역사 논쟁은 갈등과 투쟁 이상의 범위를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치적 이유로 내적 갈등을 일으키거나 갈등을 주된 관심사로 하는 역사는 거기서 벗어나 보다 넓은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국정화하면 어떨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