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노씨 부인과 대비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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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한 유배생활 막걸리 원조 '탁주' 팔며 연명
(사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노씨 부인 대비공원.

광해군은 이복동생 영창대군이 그의 외조부이자 당대 실력자인 김제남을 끼고 모반을 획책했다는 이유로 김제남에게 사약을 내렸다. 김제남의 딸은 폐위된 인목대비다.

광해군은 1618년 인목대비 어머니 노(盧)씨 부인을 제주로 유배 보냈다. 그녀는 제주 최초의 여성 유배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화북 거로마을로 유배 온 노씨 부인은 술 찌꺼기를 재탕한 탁주를 팔며 연명했다.

대비의 어머니가 만든 술이라는 뜻에서 ‘대비모주(大妃母酒)’라 불렸다.

그녀가 팔던 탁주는 ‘모주(母酒)’로 널리 불려 지면서 막걸리의 원조로 꼽히고 있다. 제주에선 지금도 막걸리를 어머니의 술이라는 뜻으로 ‘모주’라 부르고 있다.

궁핍한 유배 생활을 하던 노씨 부인은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5년간의 유배 생활을 끝내고 궁궐에 복귀했다. 그동안 자신을 돌봐준 집 주인 전량(全良)에게는 상을 주고 벼슬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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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 부인의 남편인 김제남의 후손인 연안 김씨 의민공 종회는 유배 당시 은혜를 베푼 제주도민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2005년 구좌읍 송당리에 ‘대비공원’을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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